수전 손택 지음·이재원 옮김 이후 발행·1만5,000원질병에는 공포를 자극하는 각종 은유가 들러붙어 있다. '역병'은 악, 천벌을 의미하는 말로 오랫동안 사용됐고 아돌프 히틀러는 "유태인이 국민들 사이에 인종적 폐결핵을 낳는다"며 타민족에 대한 증오를 부추겼다. 에이즈는 가장 확실한 욕설이다. 프랑스 극우정치인 르펜은 '에이즈 같은(sidatique)'이라는 표현으로 자신의 정적을 물리치는 데 톡톡히 재미를 봤으며 반자유주의 논객 루이 포웰은 86년, 고등교육 개혁안에 항의해 파업을 벌이던 프랑스 국립중등학교 학생들을 "정신적 에이즈에 걸렸다"는 말로 비난하기도 했다. 이처럼 질병은 저주이며 신이 내린 심판과 같은 이미지를 담고 있다.
'해석에 반대한다' '사진에 관하여' 등 일련의 저서를 통해 일관되게 '투명성' 개념을 주장해 온 수전 손택은 '은유로서의 질병'을 통해 질병을 둘러싼 불필요한 은유와 이미지에 대해 지적한다. 실상 질병은 치료해야 할 대상에 불과하다. 하지만 진정 환자를 괴롭히는 것은 신체적 고통보다 사회가 자신의 고통을 비하하는 데서 오는 아픔이다. 손택은 질병을 은유로 사용하면서 사람들을 공포로 몰아가는 편집증적 사회를 비판하고 질병을 질병 자체로 투명하게 봐 줄 것을 요구한다.
이를 위해 손택은 톨스토이의 '이반 일리치의 죽음', 골드스미스의 '지는 것이 이기는 것이다' 등 총 77편에 달하는 소설, 희곡, 에세이, 각종 의학 서적 등을 훑어 질병과 관련한 불합리한 은유를 골라낸다. 때문에 이 책은 딱딱한 논설이 아니라 문학적 에세이에 가깝다. 어느 평자의 말처럼 유방암 진단을 받고 치료 받은 손택이 '질병으로 고통 받는 동시대 사람들에게 던지는 공감 어린 권고'이다.
/최지향기자 mist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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