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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두터움과 스피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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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두터움과 스피드

입력
2003.01.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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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들어 잇달아 낭보가 들려오고 있다. 테니스 이형택의 ATP투어 아디다스 인터내셔널 우승, 골프 최경주의 PGA투어 개막전 공동 2위, 청소년축구 대표팀의 선전, 그리고 동계유니버시아드에서 강칠구가 거둔 스키 점프의 쾌거가 2003년 벽두를 장식하고 있다. 월드컵 4강의 신화 이후 국운이 더욱 왕성해지고 있다는 신호일까.■ 지난 해 한국기원이 대한체육회에 인정단체로 가입함으로써 스포츠계에 정식으로 입문한 바둑에도 즐거운 소식이 있다. 23일 열린 제4회 농심 신라면배 세계바둑 최강전 마지막 대국에서 이창호 9단이 중국의 뤄시허(羅洗河) 9단을 꺾었다. 이로써 한국은 단체전 10연속 우승, 한국 기사들은 국제대회 19연속 우승이라는 전무한 기록을 세웠다. 한국팀 주장으로 출전한 대국에서 져본 일이 없는 이 9단은 이번에도 훌륭하게 제 역할을 해냈다. 애늙은이 돌부처 신산(神算)이라고 불려 온 이창호 바둑의 특징은 속을 알기 어려운 두터움과 정밀한 계산이다.

■ 바둑은 집이 많으면 이긴다. 그런데 두텁다는 말은 참으로 이해하고 설명하기 어려운 개념이다. 스피드와는 양립하기 어려운 요소다. 스피드를 추구하면 필연적으로 엷어지지만, 실리에서 앞서 나갈 수 있다. 반면 두터운 바둑은 느리지만 전투과정에서 저절로 집이 생긴다. 스피드가 지금 이 자리의 현실을 중시하는 감각과 결단이라면 두터움은 앞을 내다보는 인내이며 계산이다. 스피드가 창이라면 두터움은 방패다. 그래서 스피드와 두터움의 우열을 한 마디로 단언하기는 어렵다. 바둑이 두어지는 한 스피드와 두터움의 싸움은 영원히 계속될 것이다.

■ 한국바둑의 계보에서 스피드계열의 조남철은 두터운 기풍인 김인에 의해 무너졌고, 김인은 속력행마의 조훈현에 꺾였으며, 조훈현은 이창호의 두터움에 밀렸다. 이창호는 빠른 감각과 전투력으로 급성장한 이세돌의 위협을 받고 있다. 이런 반복과 순환은 일본에서도 비슷하다. 어느 분야든 당연히 기반이 두터워져야 하겠지만, 바둑은 물론, 정국 운영이나 인생살이에서 두터울 것인가 빠를 것인가가 늘 숙제다. 가령 노무현 당선자는 두터워야 하나 빨라야 하나. 문제는 무엇이 두터운 것인지, 언제 어떻게 두터워야 하는지를 알기가 어려운 점일 것이다.

/임철순 논설위원yc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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