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이란 무엇인가. 최근 일본에서는 이 어마어마한 문제에 정면으로 도전한 소설이 나와 화제가 되고 있다. 미즈무라 미나에(水村美苗)의 '본격소설'이 그것으로 제목이 무척이나 도발적이다.이 작품의 내용은 2차대전 후 도쿄(東京)와 가루이자와(輕井澤)를 무대로 세 명의 남녀가 벌이는 비극적 연애 이야기이다. 이렇게만 말하면 별로 신선한 매력을 못 느낄지도 모르겠다. 당연하다. 이 작품의 매력은 줄거리보다는 구성에 있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작가의 실명으로 등장하는 소설가가 화자로서 자신의 가족이 미국에서 살아온 이야기를 하면서 시작된다. 이 부분에서 일인칭 소설이다. 어느날 그녀를 찾아온 일본인 청년으로부터 '정말로 있었던 이야기'를 듣고는 그것을 소설로 쓰기로 결심한다. 그러면서 소설의 화자는 작가를 찾아왔던 청년을 화자로 한 삼인칭 소설로 바뀐다. 그러다가 그 청년에게 비극적 연애 이야기를 들려주는 하녀가 화자가 되면서 일인칭 소설로 다시 바뀐다. 화자가 일인칭에서 삼인칭으로 그리고 다시 일인칭으로 바뀌면서 소설이 전개되는 방식은 일본 근대문학의 뿌리깊은 전통인 '사소설'에 대한 비평적 시각을 나타낸다. 사소설은 작가로 보이는 인물이 화자로 등장해 자신의 실제 생활을 연상시키는 단편적 일상을 그리는데, 이런 소설에서 독자는 작품을 통해 그 작품을 쓴 작가를 보게 된다. 사소설에서 나타나는 작가와 독자의 이런 직접적 관계를 이 작품은 화자의 인칭을 변화시킴으로써 자연스럽게 극복하고 있다. 도입부에서 작가로 생각되는 인물이 일인칭으로 등장하는 사소설적 부분을 설정, 소설의 근간이 되는 부분에서 등장하는 하녀의 일인칭은 전혀 다른 차원으로 독자에게 다가온다. 이런 점에서 이 작품은 사소설이 지닌 일인칭의 한계를 뛰어 넘어 작가와 작품을 확실하게 구분하고 있다.
구성면에서 또 하나의 특성은 작가가 도입부에서 이 소설이 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을 염두에 두고 쓰일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서양 고전을 바탕으로 그와 비슷한 소설을 일본어로 써 보는 작업을 통해 일본어라는 언어를 문학언어로서 재검토해 보려는 의도에서다.
이 작품은 소설이라는 형식을 통해 소설이란 무엇인가를 말하려는 상당히 지적인 시도이며 그 시도는 훌륭하게 성공하고 있다. 거창하게 느껴지던 제목도 작품을 읽고 난 후에는 순순히 납득하게 된다. 그만큼 이 작품은 소설다운 소설이라 하겠다.
황 선 영 도쿄대 비교문학문화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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