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3학년 시절 국어시간이었다. 우리나라 옛글을 배우는 차례였는데 그 때 처음 두보의 '촉상(蜀相)'을 만났다. 조선 초기의 번역으로서 '두시언해'라는 책에 실린 것이었다. 옛글이어서 난해하기 짝이 없었으나 그래서 더 좋았는지 모른다. 암호 같은 말들이 차츰 해독이 되면서 내가 그 때까지 경험해보지 못했던 아름다움과 만난 것이다.옛글이 가진 독특한 멋도 멋이려니와 원문의 맛을 충분히 살린 번역도 좋았고 무엇보다 처음 만나는 두보의 시세계는 나에게 감동 그 자체였다. '촉상'은 두보가 제갈량의 사당을 찾아보면서 그 소회를 읊은 그의 백미 편 중의 하나이다. 제갈량의 삶 자체가 비극적이기도 하지만 두보의 시도 장중하면서 비극미가 넘친다. 특히 제일 마지막 구절 '길이 영웅들로 하여금 눈물로 옷깃을 적시게 하는구나'(長使英雄淚滿襟) 대목은 두고두고 애송되는 구절이다.
실은 나는 서양 문화밖에 몰랐다. 슈베르트를 좋아해서 작곡가의 꿈을 가지게 되었고 교회 마당에서 나의 음악적 소양이 형성되었다. 그러니 동양 예술이나 동양적 아름다움에 눈 뜰 기회가 없었다. 그런 내가 어떻게 이 시를 만나자마자 좋아하게 되었는지 신기하다. 독서를 좋아했던 나는 당시 삼국지를 탐독했는데 그것이 토양이 되었음은 물론이겠다.
어쨌든 '촉상'을 만난 후에 나는 그것으로 만족할 수가 없어서 책을 찾아 나섰다. 그 결과 만난 것이 '두시언해비주'(杜詩諺解批註/이병주 저, 통문관 발행)이다. 이 책은 두시언해를 다시 현대문으로 해석하면서 주석을 붙인 책으로, 말하자면 전문 서적에 가깝다. 그러나 이 책은 두보에 대해서, 당시(唐詩)와 두시언해에 대해서 자세히 쓰고 있는 책이기 때문에 나에게는 더할 바 없이 좋은 '동양 문화 안내서'였다. 이후 내가 좋아하게 된 동양 문화는 모두 이 책이 만들어 놓은 터널을 통해서였다.
'촉상'과 '두시언해비주'는 나를 또 '수제천' '전폐희문' 같은 국악 곡의 세계로 이끌어 주는 역할도 했다. 그 만남 이후에는 이 곡들이 별로 낯설지 않았다. 즉 '촉상'에서 발견한 독특한 아름다움의 세계를 다시 이 곡에서 만나는 것처럼 느꼈던 것인데 이 채널을 통해서 나는 국악을 알게 되었고 결국 오늘 나의 음악 스타일을 만들게 되었다. 나는 '촉상'이라는 곡을 세 번 작곡하였다. 모두 다 아직 만족스럽지 못한 곡이어서 언젠가 네 번째 곡을 쓸 생각을 가지고 있다. '촉상'에게서 받은 빚을 아직 다 갚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이 건 용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