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겐 하나의 나침반이 필요했다. 내가 길을 잃었다는 것을 일단 인정하고 나자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누군가 그 길을 아는 사람의 뒤를 따라 가는 것이었고 그들의 길을 주(註) 삼아 따라가면 내가 처음 길을 잃어버린 자리를 찾을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헌책 수집가 조희봉(32)씨는 고백적 에세이 '전작주의자의 꿈'(함께읽는책 발행)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 책은 헌책을 모으고 읽으면서 거기서 세상 건너는 법을 찾아온 그의 열정과 안타까움, 기쁨과 희망을 진솔하게 전하고 있다.
여기서 '전작주의'는 한 작가의 모든 작품을 섭렵함으로써 그 작가와 그의 작품 세계를 온전히 자신의 세계로 받아들이려는 자세를 뜻하는 것으로 그가 만들어 낸 말이다. 전작주의는 그의 나침반인 셈이다.
길을 잃었다는 고백은 1980년대 대학을 다닌 세대로서 90년대 사회주의 붕괴를 목도하면서 기존에 믿었던 가치와 신념이 먼지처럼 날아가는 것에 괴로워한 경험을 가리킨다.
그도 남들처럼 대학을 졸업하고 평범한 직장인이 됐다. 하지만 고민을 멈출 수는 없었다. 대학시절 처음 읽었던 이윤기의 소설 '하늘의 문'을 다시 꺼내 보면서 빛을 보았다. 그는 이윤기의 모든 책(소설, 번역서, 기타 모두 합쳐 72종 90권)을 모으고 읽었다.
절판이 돼서 구할 수 없는 것들이 헌 책방에는 있었다. 그렇게 책으로 만난 인연으로 제자를 두지 않는 이윤기로부터 1호 제자로 인정 받았고, 결혼식 주례로 모시는 기쁨도 얻었다.
이 책은 이윤기 뿐 아니라 고종석 서정주 안정효 등 그의 전작주의 대상이 된 작가들의 책과 작가론에 가까운 감상기 외에 헌책 수집가로서 터득한 책 고르는 지혜, 헌책방 순례기도 담고 있다.
왜 굳이 헌 책을 찾아 다닐까. 그는 단순히 돈을 아끼는 재미 때문만은 아니라고 말한다.
"물론 나온 지 얼마 안 돼 새책이나 다름없는 책을 싼 값에 샀을 때는 횡재한 기분이죠. 하지만, 그게 전부가 아닙니다. 일반 서점에서 구할 수 없는 보물이 헌 책방에 있어요. 헌책을 모으는 진짜 이유는 숨어있는 세상의 반쪽을 보기 위해서죠. 거기엔 정신없이 빠르게 돌아가는 세상의 속도를 일부러 거스르며 자신의 중심을 잡으려고 하는 거꾸로 사는 재미가 있습니다."
헌 책을 모으기 시작한 것은 대학 졸업 후, 그러니까 한 10년이 됐다. 인터넷 프리챌의 헌책 동호회 '숨어있는 책'에서 2년간 마스터로 활동했고 YMCA 인터넷 신문 Y―TIMES에 독서 칼럼을 연재 중인 그는 최근 다니던 회사를 그만 뒀다. 다음 달 춘천으로 이사해 좀 더 시간 여유가 있는 다른 직장에서 일하게 된다.
"책을 모으는 수집가로서 책을 읽는 '열독가'에게 존경심을 바친다"는 그는 "춘천에 가면 헌 책방 나들이가 서울에서보다 줄어들어 섭섭하겠지만, 수집보다는 읽는 데 더 많은 시간을 쓸 수 있을 테니 행복하다"고 웃었다.
/오미환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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