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盧武鉉·57) 대통령-문재인(文在寅·50) 민정수석비서관-이호철(李鎬喆·46) 인사검증비서관.'노무현 당선자와 함께 한때 '부산3인방'으로 불렸던 인권 변호사와 시국사건 전력자가 노무현 시대, 사정과 개혁의 키를 잡았다. 문 내정자는 부산의 대표적인 인권 변호사이고, 이 내정자는 1981년 부림(釜林) 사건의 주역으로 노 당선자의 인생 항로를 바꾼 장본인이다. 독재정권의 인권 유린에 항거했던 인사와 80년대 대표적인 용공조작 사건의 피해자가 각종 비리와 부패를 척결하고, 고위 공직자의 자질을 검증하는 업무를 맡게 된 것은 개혁이 간단치 않을 것임을 예고하는 것이다.
노 당선자와의 만남은 이 내정자가 먼저였다. 부산대 총학생회장 출신인 이 내정자는 81년 부림사건 주동자로 구속됐을 때 무료 변론을 맡은 노 당선자와 첫 인연을 맺었다. 노 당선자는 구치소에서 피투성이가 돼 있던 이 내정자를 접견하곤 현실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노 당선자는 사건을 이해하기 위해 검찰의 공소장에 적힌 금서(禁書)를 읽으며 전혀 딴 세상을 만났다. 이 내정자는 노 당선자가 88년 총선에서 당선된 뒤 잠시 의원보좌관으로 일하는 등 선거 때마다 노 당선자를 돕기도 했지만 선거가 끝나면 함께 일해보자는 노 당선자의 간청에도 불구하고 표표히 곁을 떠났다. 노 당선자는 그러나 지금도 그를 '정신적인 형제'라고 부를 정도로 신임하고 있다.
노 당선자는 "노무현의 친구 문재인이 아니라 문재인의 친구 노무현"이라고 말할만큼 문 내정자도 깊이 신뢰하고 있다. 어릴적 친구는 아니지만 노 당선자가 거친 세파를 헤쳐오는 과정에서 줄곧 호흡을 같이해 사실상 인생의 '죽마고우(竹馬故友)'인 셈이다. 문 내정자는 75년 경희대 4년 재학 중 유신반대 시위를 주도하다 구속·제적된 뒤 80년 복학했다. 그러나 5·18때 다시 구속돼, 청량리경찰서에 수감돼 있던 중 사법시험 합격소식을 듣게 된다. 나이가 7세, 사법시험은 5회가 위인 노 당선자와는 82년 부산에서 변호사 개업을 하면서 인연을 맺었다. 문 내정자는 노 당선자의 인권 변호사로의 변신과 정치 입문을 적극 지원했다. 함께 민주화운동을 한 '동지'이자 '인권보호'에 헌신한 변호사로서 문 내정자는 노 당선자의 파트너로 오래전부터 지목돼 왔다.
노 당선자는 지난 13일 두 사람을 서울의 한 호텔로 불렀다. 그리고 3시간30여분이 넘도록 술잔을 기울이며 새 정부 개혁의 핵심 요직을 맡아 사법 개혁, 인사 개혁을 이뤄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두 사람은 막판까지 현실 정치에 참여하는 것을 놓고 고심에 고심을 거듭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 내정자는 이날 민정수석으로 내정된 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기자실에 들렀다. 문 내정자는 "정치를 잘 모르고 융통성이 있는 성격이 아닌데다 민정수석이란 자리가 고유 업무외에도 사정, 제도개혁, 인사검증 등 업무가 많아 잘 해낼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지금 열심히 일을 배우고 있는데, 가장 먼저 배운 말이 '비서는 입이 없다'는 말이었다"고 말했다. 문 내정자는 "정치에 거리를 둬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이 내정자는 이날 끝내 모습을 나타내지 않은 채 '잠행'을 거듭했다.
/이태규기자 tg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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