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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인시대" 인기업고 김두한 책 봇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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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인시대" 인기업고 김두한 책 봇물

입력
2003.01.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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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대하드라마 '야인시대'의 인기를 타고 김두한(1918∼1972)을 다룬 책이 쏟아지고 있다.지난해 여름부터 나오기 시작한 김두한 관련서는 이번 주 서점에 나온 '김두한 자서전'(1·2권, 서울메트로홀딩스 발행·사진 위)과 '후계자―김두한과 조일환'(1·2권, 명솔출판 발행·사진 아래)을 비롯, 소설 회고록 각 3종과 만화 9종 등 15종에 이른다.

'김두한 자서전'은 40년 전에 나온 김두한 회고록 '피에 물든 건국 전야'를 복간하면서 그의 말년에 대한 유족들의 증언을 덧붙여 만든 책이다. 또 다른 신간 '후계자…'는 김두한의 후계자를 자처하는 왕년의 주먹 조일환(68)씨를 취재해 소설 형식으로 엮은 이른바 '협객' 세계의 비사(秘史)이다.

자서전은 김두한 자신의 구술로 쓰여진 책이어서 자기 합리화의 요소가 많다. 나라를 위해 그랬다, 단순한 깡패가 아니었다, 의리를 지켰다, 불의와 싸웠다는 식이다.

이 점은 '후계자…'도 마찬가지여서 심지어 폭력 조직을 양성화해 정부의 관리 아래 두자는 위험한 주장까지 하고 있다. "외국의 범죄 조직들이 한국에 들어오고 있는데 경찰력만으로 막는 데는 한계가 있으니 한국 건달들로 하여금 그들을 잡게 하라"는 얘기다.

더욱 큰 문제는 김두한 관련서적의 3분의 2가 어린이용 만화이고 이 책들이 상당히 잘 팔리고 있다는 점이다. 김두한 만화 9종 가운데 지난해 6월과 7월에 나온 '장군의 아들 김두한'(흰돌 발행)과 '김두한―주먹황제에서 국회의원으로'(채우리 발행)는 지난 연말까지 교보문고 광화문점에서만 각각 1,207권 1,123권이 팔려 나가 베스트셀러 자리를 지키고 있다. 지난해 10월에는 판매부수에서 각각 2, 3위까지 올라갔다.

일제 시대 혹은 해방 이후를 포함해 김두한의 일대기를 다룬 이들 만화는 폭력 세계를 의리와 멋이 넘치는 무대로 묘사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김두한을 나라와 민족을 위해 일한 영웅으로 그리고 있어 어린이 정서나 역사 인식에 나쁜 영향을 미칠 수도 있을 것으로 우려된다.

성인 독자를 겨냥한 소설로는 홍성유의 '장군의 아들 김두한'(자음과 모음 발행)을 비롯해 '풍운아 김두한'(오세발, 청목사 발행) '야인'(이룡, 홍익출판사 발행)이 나와 있다. 만화만큼 인기를 끌지는 못하고 있다. 가장 많이 찾는 오세발, 홍성유의 책이 지난해 6월부터 연말까지 각각 137권, 111권 팔렸다고 교보문고 광화문점은 밝혔다.

/오미환기자 mhoh@hk.cok.r

■ 어떻게 봐야 하나

김두한을 다룬 소설, 전기, 드라마나 영화 등의 공통된 특징은 한결같이 김두한을 영웅으로 묘사한다는 점이다.

일제 시대 서울 한복판 종로의 '제일 주먹'으로 일본 깡패들과 싸웠고, 해방 후 우익 정치인들의 '행동대원' 노릇을 했으며, 박정희 독재에 항거하는 정치인으로 생을 마감한 그가 대단히 매력적인 캐릭터인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그는 애당초 힘과 폭력에 의지해 생계를 꾸려 간 주먹꾼이었고, 좌우 이념이 교차하는 해방 정국에서는 자의든 타의든 좌익 척결에 앞장 선 극우 반공주의자였다. 그 자신도 자서전에서 스스로를 '백색테러리스트'라고 밝혔다. 이런 모습을 전체적으로 조명하지 않고 민족주의자나 민주 투사, 또는 소위 '진짜 사나이'로 미화하는 것은 잘못이라는 지적이 무성하다.

김두한은 일제 시대 일본인 하야시(실제로는 조선인 선우영빈)와의 싸움, 김좌진 장군의 아들이라는 점에서 민족주의자의 이미지가 부각됐지만 본질적으로는 폭력배의 세력 다툼에서 승리한 주먹꾼에 지나지 않는다는 비판도 있다.

해방 공간의 좌우 투쟁 과정에서 이른바 '정치 깡패' 김두한의 활동을 대단한 활약으로 묘사한 만화는 청소년의 역사 인식을 그르칠 수도 있고 폭력의 위험성을 간과하게 할 수도 있다.

최근 나온 김두한 회고록은 '좌익과의 투쟁을 위해 때로는 협박 공갈로 조달한 자금으로 대한민청 감찰부와 별동대 운영에 충당했다. 당시 수도경찰청장인 장택상, 미 군정 경무부장 조병옥 등의 묵인 아래 수차례에 걸친 강도 행위로 반탁자금 7,000만원을 마련했다'고 썼다.

1954년 국회의원에 당선된 김두한은 사사오입 개헌에 반대하며 야당에 가담했고, '국회 오물 투척 사건'으로 대중에게 카타르시스를 안긴 것은 사실이지만 이 또한 민주 투사의 이미지로 단순화하기는 곤란하다.

김창남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실존 인물을 극화할 때는 대중의 영웅에 대한 갈증을 충족시키기 위해 지나치게 미화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며 "미국의 전설적 갱스터 '알 카포네'가 미국에서 훌륭한 인물로만 그려지지 않듯 김두한 역시 비판적 조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범수기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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