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J가 직접 전화를 걸어 잠시 나가 있으라 했다."해외에서 도피중인 김우중(金宇中) 전 대우그룹 회장이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을 향해 칼을 뽑아 들었다. 이에 따라 김 회장이 미국 경영전문지 '포천'에 실어보낸 폭탄발언의 진위와 배경, 그리고 그 파장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김 전 회장이 고문변호사인 석진강(石鎭康) 변호사를 통해 '당시 채권단의 전화를 받은 적은 있지만 대통령에게서 직접 전화를 받은 적은 없다'고 포천지의 보도내용을 바로 부인하고 나섰지만 김 전 회장 문제는 여전히 대단한 폭발력을 가지고 있다는 게 정·재계의 공통된 분석이다.
'현상범 김우중'이라는 제목의 포천지 장문 인터뷰 기사에서 단연 주목을 끈 대목은 김 전 회장의 출국 배경이다. 김 전 회장은 1999년 8월 대우그룹 부도직후 한국을 떠나 3년 반 동안 도피생활을 하게 된 경위와 관련, "검찰 수사를 피하려고 떠난 것이 아니다. 1999년 당시 정부 고위 관리들이 대우 몰락에 대한 사법적 책임을 면하고 귀국 후 자동차회사를 경영할 수 있게 해주겠다고 약속하면서 출국을 설득했기 때문에 한국을 떠났다. 김 대통령도 직접 전화를 걸어 워크아웃 전에 잠시 동안만 나가 있으라고 말했다"고 주장했다. 김 전 회장은 "힘있는 사람 중에 그의 덕 안 본 사람 별로 없다"는 말이 돌 정도로 로비에 강했다. 그는 여당과 정부 고위공무원은 물론 야당에도 정치자금을 제공, 전방위 로비를 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 때문에 김 전 회장이 현 정권에도 상당한 정치자금을 제공했을 것이며 장기 외유가 가능한 것도 현 정부가 잡아들일 생각이 없기 때문이 아니냐는 풍문까지 돌았다.
실제로 지난해 최규선(崔圭善) 게이트가 터지면서 최씨는 김 대통령이 김 전회장을 도우라고 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최씨는 당시 구속 전 공개된 녹음 테이프를 통해 김 대통령이 "그 사람(김 전 회장)을 돕게. 내가 대통령에 당선되는 데 큰 힘을 발휘했네. 차기 전경련 회장이 될 것이네"라고 말했다고 주장했다. 현 정부 출범직후 대우그룹이 부도나기 전까지 김 대통령이 김 전 회장을 각별히 생각하고 자주 의견을 들은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김 전 회장이 정국 상황에 맞추어 인터뷰의 수위를 조절하는 등 귀국과 복권을 위한 치밀한 '상륙작전'을 벌이고 있으며 이번 회견도 그 일환이라는 시각도 제기되고 있다. 즉, DJ의 퇴임에 맞춰 2월쯤 귀국해 DJ와의 정경유착 거래 내역을 공개한 뒤 대우 부도를 자신의 잘못이 아닌 정부 잘못으로 돌려 면죄부를 받고 재기의 발판으로 삼으려는 게 아니냐는 분석이다.
김 전 회장의 측근들은 "포천지 인터뷰는 지난해 5, 6월께 이뤄진 것으로 김 회장의 귀국문제와는 관련이 없다"며 "김 전 회장이 2월중에 귀국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 검찰 등에 분위기를 타진한 것은 사실이지만 구체적으로 추진된 것은 없다"고 해명했다. 측근들은 또 "김 전 회장은 귀국 후 사법처리를 당하는 것은 어쩔 수 없더라도 외환도피사범 같은 파렴치범으로 몰려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전했다.
/김경철기자 kc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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