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경영'을 내세우며 김대중(金大中) 정권 초기 밀월관계를 유지했던 대우는 왜 몰락했을까.재계 관계자들은 김우중(金宇中) 전 회장이 포천지에서 주장한 정치적 음모론 보다는 공격적이고 무리한 차입경영을 직접적 원인으로 보고 있다. 김 대통령은 야당시절부터 김 전 회장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해왔고, 외환위기의 주범으로 몰린 재계는 현정권 출범 직후 김 전 회장을 전경련 회장으로 추대하기도 했다.
그러나 당시 대우는 무리한 해외투자로 진 110억달러의 해외채무가 연장되지 않고 채권단들이 자금회수에 나서면서 유동성 위기에 직면해 있는 상태였다. 김 전 회장은 1998년 중반 대우자동차의 지분을 GM에 매각, 돌파구를 마련하려 했으나 실패했고, 이때부터 정부와 채권단에서는 '대우부도 불가피론'이 나돌기 시작했다. 김 전 회장에게 우호적이었던 김 대통령도 이 즈음에는 대우가 구조조정을 회피하고 있다는 보고가 계속되면서 점차 김 전 회장에게 부정적 인식을 갖게 됐다는 게 측근들의 설명이다.
1999년 4월 사면초가에 몰린 김 전회장은 34개 계열사를 9개로 줄이는 구조조정안을 다시 발표하고, 사재를 포함한 10조원의 담보를 채권단에 내놓았다. 그는 마지막으로 김 대통령과의 면담을 끈질기게 시도했으나 거부되자 7월 중순 "회사경영이 정상화한 뒤 반드시 전문경인체제로 바꾸겠다"는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 그러나 마지막 희망이었던 10조원 담보도 강봉균(康奉均) 경제수석이 "김 회장이 내놓은 재산은 모두 처분대상"이라는 발언과 함께 물거품이 됐다. 증시도 71포인트나 폭락, 최악의 상황으로 치달았다. 결국 채권단은 8월26일 대우그룹의 워크아웃을 선언했고, 김 전회장은 당일 김포공항을 통해 우즈베키스탄으로 떠나 기약 없는 방랑을 시작했다.
/권혁범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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