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나 설을 맞아 한 해가 바뀔 때면 수많은 사람들이 점 집을 찾는다. 사업, 결혼, 진학, 남녀관계, 가족사 등등 모든 것의 미래는 불확실하고 욕망은 크기 때문이다. 점의 종류나 방법도 한층 다양해지고 현대화했다. 전통적인 신점이나 오행학에 근거한 역술은 물론이고 78장의 카드로 치는 타로점, 수정구를 어루만지며 떠오르는 영감을 풀어내는 구슬점 등 신종 점이 등장해 젊은 층까지 끌어들인다. 또 점 집 뿐 아니라 사주를 봐주는 카페, ARS전화를 이용한 통신상담, 인터넷을 이용한 사이버철학관, 핸드폰으로 연락하는 출장점 등 점을 보는 방법도 헤아릴 수 없다. 이렇게 점이 성행하는 것은 사회의 불안정도가 높은 것을 반영한다. 퇴직·이혼 등으로 전통적인 가족 관계가 깨어지고 개인 신상의 변화도 극심해지면서 사람들은 인생 고비길의 어려운 선택을 대신해 줄 인생가이드를 찾고 있는 것이다. 때문에 점이 인생상담 창구로 이용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조두영 서울대의대명예교수는 "역술인은 결국 상담료가 조금 싸고 부담없이 접근할 수 있는 카운셀러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한다. 실제로 역술인들이 말하는 역학의 기능도 '인생을 뒤집는 게 아니라 가는 길을 순탄하게 하고, 제대로 가는 길인지 확인하게 하는 것'이다. 설을 앞두고 '리'라는 예명으로 강남 주변에서 소문난 이명림(여·45)씨, 성명학 사주 등에 능한 예당원 원장 예당(40), 압구정동을 중심으로 핸드폰 출장점을 보는 삐삐도사(33) 등 장안에 소문난 역술인들을 만나, 올해 운세와 처신에 대해 물었다. 제시하는 해법은 의외로 "기본을 지키며 살아라"이다. 많은 사람의 적나라한 속내를 듣게 되는 이들 역술인들이 공통적으로 지적하는 것은 "우리 사회가 너무나 기본에서 벗어났다"는 것. "터무니 없게 높은 욕망수준을 오로지 '운'으로 거머쥐겠다는 사람들을 보면 사실 억장이 무너진다"는 이들은 대부분 '그래도 먹던 밥이 맛있다'거나 '한 삼년만 참고 기다리라'고 에둘러 답변하지만 정작 해주고 싶은 말은 "분수와 기본을 지키며 살아라"는 것이다. 이들이 들려주는 올해 '바른생활지침'을 소개한다./김동선기자 weeny@hk.co.kr
김신영기자 ddalgi@hk.co.kr
● 역술인이 말하는 "福부르는 처신법"
▶돈을 좇지 마라
고객들의 비정상적 욕망 가운데 으뜸은 '물욕'이다. 돈 얘기도 예전처럼 '먹고 살만 하냐'가 아니라 '떼돈을 벌 수 있겠느냐'고대뜸 물어온다. 결혼을 앞두고 궁합을 보러 오는 여성들이 가장 궁금해 하는 것도 "그 사람과 결혼하면 얼마나 영화를 누릴 수 있는가"이다.
그러나 정작 큰 부자가 될 운을 타고 난 사람은 드물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노력한 만큼 벌고, '따뜻하게 살 정도'이거나 '있을 때가 있으면 없을 때도 오는' 평범한 운이다. 진짜 욕심이 있다면 그만큼 노력해야 한다. 돈을 좇지 말고 일을 좇아라. 열심히 일을 하다 보면 돈이 뒤에 와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연애는 결론을 보고 가라
성의 문란이 우리 사회의 비정상성을 확대재생산한다. 요즘 사람들은 혼외 정사 대상자와의 궁합을 물어오거나, 배우자에게 들키지 않고 불륜을 계속할 수 있는 방법들을 물어온다. 예전에는 여성에게 '도화살이 끼었네' '두 남편 끼고 살겠네'라고 하면 몰매를 맞았겠지만 요즘은 '남자에게 인기가 있다'는 의미로 반색을 하고 듣는다. 심지어 동창회에 나가 애인얘기를 하지 않으면 왕따를 당하기 때문에 '애인을 사귀고 싶다'고 물어오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불장난은 부질없는 짓이다. 불륜이 문제가 돼 이혼을 해도 상관이 없다는 자세는 문제다. 불륜이 들키지 않더라도, 오래 지속되기 어려운 것이 남녀관계다. 쉽게 금이 가는 불륜을 나중에 되돌아 보면 뒤가 가려울 것이다.
▶기다리며 참으라
요즘 세상은 '사랑'은 넘쳐나는데 '용서'는 점점 줄어든다. 자신의 불륜에 대해서는 당당하면서 배우자의 불륜에 대해서는 가차없다. 참을성도 없다. 이혼을 해도 '신혼여행지에서 돌아온 직후' 해버린다. 여성에게도 그만큼 대안이 많아졌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 같다. '기'가 흐르듯이 누구에게나 좋은 시기가 지나면 나쁜 시기가 오고, 나쁜 시기가 지나면 좋은 시기가 온다. 나쁠 때는 근신하고, 좋을 때는 다가올 겨울을 대비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점을 100% 과신하지 말라
생년월일시를 근거로 한 역학이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것은 70∼80% 정도다. 신내림으로 점을 보는 신점 역시 족집게란 있을 수 없다. 점이란 큰 줄기만 보는 것이고 세부 사항은 인간의 노력에 따라 달라지는 것. 맹신하는 사람은 '운명'에 기대어 정당한 노력을 게을리 하는 사람들이다. 한탕주의를 노리는 사람일수록 허황된 점괘에 빠져 패가망신하기 십상이다.
● 계미년 운세
2003년 계미년 운세는 어떨까.
일년을 12지지(地支) 로 나누는 것처럼 한 해도 12지지의 하나에 해당한다고 풀이하는 오행학에 따르면 계미년은 음력 6월에 해당하는 시기이다. 양력으로 8월에 해당하는 음력 6월은 더운 기운이 강하면서도 속으로 찬 기운을 품고있는 시기이다.
성신여대 문화산업대학원에서 생활역학과 예절을 가르치는 진민자 겸임교수는 "음력 6월은 늦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려는 변화의 시기"라고 말한다.
그는 "변화의 시기에는 늘 주위 상황을 살피고 근신해야 하는 것처럼 2003년에는 큰 일을 벌이지 않는 것이 좋다"고 말한다. 옛사람들이 음력 6월이나 음력 10월에 혼례나 개업 등 큰 일을 벌이지 않았던 것과 같은 맥락이다.
계미년에는 겨울 태생들이 좋다고 한다. 음력 6월은 화(火)가 많아 더운 시기. 겨울에 태어난 사람에게는 이 화가 따뜻한 양지 역할을 한다. 반면 여름 태생에게는 별로다. 더운 기운이 합해져서 견딜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운은 흐르는 것. 여름이 가고 가을이 오는 것처럼, 지난 몇 년간 승승장구했던 사람이라면 찬 바람이 부는 때를 대비하는 것이 좋다. 그러나 몇 년 운이 나빴던 사람이라면 운이 펼쳐질 때이므로 희망을 갖고 새로운 일을 도모해 볼 만하다고 진 교수는 말한다.
녹현철학연구원의 이세진 원장은 "뜨거운 기운을 가진 양처럼 올해는 안에 담고 있던 왕성한 기운을 밖으로 펼치는 운세"라고 말한다. 반면 겉으로 화려하고 왕성하지만 대신 알맹이가 없어 경솔한 면은 지난해와 비슷한 양상이다.
/김동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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