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밤 9시 서울 마포의 서울대 동창회관을 나서는 서울대 김진균(金晉均·65·사진) 교수의 어깨는 그리 가볍지 않았다. 다음 달 정년 퇴임을 앞두고 이날 만찬을 겸해 열린 퇴임 기념 행사는 30년 넘게 이어온 사회학 강의와 연구, 남달랐던 민주화 운동을 정리하는 자리가 아니라 새출발을 다짐하는 자리였기 때문이다.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민주노동당, 민주화를 위한 전국 교수협의회,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등 그가 직간접으로 간여한 여러 사회운동 단체와 정당 대표들이 한결 같이 "강의에서 풀려났으니 더 열심히 참여해 달라"고 주문했다. 1970년대 이후 민중사회운동 시각에서 본 한국 지성사 정리 작업에도 매달려야 하니 일이 더욱 많아질지도 모른다.
제자들이 주축인 한국산업사회학회 회원들과 각종 사회운동 단체 대표 등 300여 명이 참석한 이날 행사의 무게중심은 기념 논총 봉정에 있었다. 김 교수가 자신과 후학들의 글을 가려서 문화과학사에서 펴낸 '저항, 연대, 기억의 정치' 2권과 산업사회학회가 사회학 논문을 모아 한울에서 낸 또 다른 2권 등 4권은 형식이나 내용에서 매우 각별했다.
대학 교수의 퇴임 기념식장에 으레 등장하는 행사용 한정본이 아니라 일반 판매를 위해, 그것도 갑오농민전쟁부터 90년대까지의 한국 사회운동을 한눈에 조망하고 한국사회 이론이나 산업·노동 사회학의 쟁점을 정리했다.
조희연(성공회대) 정근식(전남대) 정진성(서울대) 강내희(중앙대) 교수 등 33명의 글을 모은 '저항, 연대, 기억의 정치'는 노동 정치 문화 여성 소수자 인터넷 등 우리 사회 각분야의 사회 운동 흐름을 개괄한 책이다. '운동에 참여한 사람들이 뜻을 이룰 수 있었던 조건과 좌절한 조건을 검토해 이해함으로써 역사적 소임을 알아낼 수 있다고 본다'고 김 교수가 서문에서 썼듯 현재 한국 사회운동의 지형을 그대로 드러낸다.
산업사회학회에서 엮은 '사회이론과 사회변혁' '노동과 발전의 사회학'은 각각 마르크스 이론과 부르디외의 과학사회학 등 비판적 사회이론을 재조명하거나, 노동과 정보화, 발전과 복지, 공동체 문제 등을 다루었다. 특히 '노동과 발전의 사회학'은 일본의 비정규 노동자 문제나 영국의 공기업 사유화 사례를 재검토해 눈길을 끈다.
김 교수는 이 달 초 '진보'를 주제로 여기저기 쓴 글을 모아 '21세기 진보운동의 기획'(문화과학사 발행) '진보에서 희망을 꿈꾼다'(박종철출판사 발행)도 냈으니 퇴임에 맞춰 모두 6권의 책이 한꺼번에 나온 셈이다. 서관모(충북대 교수) 산업사회학회장은 "선생은 사회주의나 마르크스주의에 경도되지 않으면서 민중적·민족적 사회과학을 지향했다"며 "민중사회학 개척은 한국 사회학계에서 매우 뜻 깊은 업적"이라고 말했다.
/김범수기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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