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전(上典)도 두 배, 업무도 두 배, 스트레스도 두 배, 요즘은 모든 게 두 배야!"과천 경제부처의 한 고위 공무원이 사석에서 무심코 던진 말이다. 그는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 대한 각 부처의 현안 보고가 시작된 것과 동시에 청와대가 '국민의 정부' 5년을 결산하는 행사를 잇따라 개최하는 바람에 관료들이 이중고(二重苦)를 겪고 있다고 푸념했다.
실제로 청와대는 최근 각종 보고대회를 잇따라 열고 있다. 17일에는 김대중(金大中) 대통령과 국무총리, 각 부처 장관들이 참석한 가운데 '국민의 정부, 정책평가보고회'가 열렸고, 23일에는 경제부총리와 산자부 장관 등 주요 부처 장·차관 15명이 참석한 '국민의 정부, 무역·투자유치 성과 보고회'가 있었다. 그러나 행사 내용은 기대 이하였다. 1997년말 89억달러이던 외환보유액이 2002년에는 1,183억달러로 늘었고, 97년 4.5%였던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2.7%로 안정됐다거나, 5년간 949억달러의 무역흑자와 외국인투자 유치액이 600억달러에 달했다는 치적 홍보가 대부분이었다.
사실 거시지표로 나타나는 현 정부의 경제성적표는 무디스나 S& P 등 외국의 신용평가회사도 인정하듯 A등급을 받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굳이 정권 교체기에 보고대회를 열어 알려야 할 정도로 시급한 것일까. 영어에서 졸업을 뜻하는 '커멘스먼트(Commencement)'는 동시에 시작이란 의미도 갖고 있다. 한 과정의 끝은 또다른 시작이란 것이다. 이는 김 대통령과 '국민의 정부'도 마찬가지다.
2003년 2월이 김 대통령과 '국민의 정부'에게는 졸업 시즌일 수 있지만, 대다수 대한민국 국민에게는 또 다른 시작일뿐이다. 따라서 현 정부에게 시급한 일은 치적홍보가 아니라 새로운 시작을 위한 매끄러운 정책 인계이며, 이중고에 시달리는 공무원의 부담을 덜어주는 일이기도 하다.
조철환 경제부 기자 chc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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