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기 유학을 가서 미 뉴욕 근교 공립학교에 다니던 J군은 다음 학년에 편입허가를 받은 사립 명문고등학교로부터 전과목 배치고사 시험지를 우송 받았다. 어머니는 시험감독도 없이 혼자 집에서 배치고사를 치르게 하는 미국 학교가 좀 허술하다는 생각을 했지만, 아들에게는 책을 찾아보아서라도 시험을 잘 봐 우수반에 들어가라고 당부했다.그러나 알고 보니 그것은 어리석은 일이었다. 자기 실력보다 높은 반에 가면 진도를 맞추지 못해 실력이 늘지 않을 것이고, 설령 열심히 공부해서 실력은 향상되었다 해도 내신 성적에서 불이익을 당할 것이다. 반대로 자기 실력보다 낮은 반에 가면 성적은 잘 나올 수 있지만 실력이 늘지 않아 대입수학능력 시험에서 큰 손해를 볼 수 있다. 그러니 정직하게 시험을 봐 학력에 맞는 반에 편성되는 것이 가장 큰 이익이다. 그곳 학교는 학생이 학기 도중이라도 실력이 월등하게 향상되면 학년을 초월해서 상급반으로 보낸다. 그래도 더 탁월한 우수생이 나오면 그 숫자가 단 한 명이라도 따로 가르친다. 시설이나 교사가 부족한 공립학교에서는 우수 학생을 근처 대학으로 보내 해당 과목을 개별 학습시키기도 한다. 개개인의 능력을 극대화 시켜주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인재가 발탁 양성된다. 이런 교육 방식이 미국의 국가경쟁력을 높이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평준화교육의 찬반 논쟁이 지루하게 반복되고 있다. 그동안 불어닥친 과외 열풍은 태풍이 되었고 그 여파는 조기 유학바람까지 몰고 왔다.
교사가 강의하는 내용을 한 마디도 알아듣지 못한 채 고교 3년 동안을 교실에 앉아 있어야 하는 학생 수가 절반 이상이라는 사실은 어제 오늘의 이야기도 아니다. 인생의 가장 중요한 시기, 지성과 감성의 성장기에 그들은 교실에서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깨달았을까? 교사는 그들을 어떻게 대했을 것이며 친구란 그들에게 어떤 의미일까? 그 시간에 능력과 적성에 맞춰 공부했더라면 그들의 인생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너무 일찍 자기 앞의 생에서 '포기'를 배워버린 그들에게 어른들은 옳고 바르게 자라야 한다고 큰소리칠 수 있는가?
성적 우수 학생들도 그렇다. 그들은 반복되는 강의에 염증이 솟아 학습의욕이 없다. 탐구심이 넘치고 지적욕구가 남달라 더 깊이 알고 싶지만 교사는 가르쳐주지 않는다. 학부모들은 가력을 총동원해서 과외공부를 시켰건만 자녀들은 정작 대학에 가면 수학능력이 모자라는 지진아 취급을 받는다.
현행 평준화 교육은 본래의 '평등' 정신 취지에도 위배된다. 적성과 능력에 따라 교육받지 못하고 있는 소수의 인재들 또한 자기가 마땅히 배울 권리를 박탈당하고 있는 것이다. 따져보면 실로 엄청난 국력이 매장되고 있는 것이다.
무한경쟁 시대다. 세상은 급속히 변해서 직업만 해도 그 수가 1만2,000개를 넘어설 만큼 사회적 수요는 다양해지고 있는데 언제까지 이렇게 획일적이고 구태의연한 교육 방법으로 학생들을 한 곳으로만 묶어 놓을 것인가.
방법은 있다. 급진적인 교육 개혁은 또 다른 희생양을 부를 것이므로, 평준화교육의 틀을 유지하면서 우선 동일 학교 내 수준별 학습을 실시하여 효율적인 학습 운용을 한다. 그와 동시에 다양한 방식의 교육 기관을 양성한다. 저마다의 특성을 살린 대안학교를 늘려 활성화하는 한편 지역별로 자립형 사립고등학교를 세워 학교간 경쟁을 통해 학생들의 실력을 신장시킨다. 또한 팽창하는 영어 교육 수요에 맞춰 외국인학교도 현행처럼 특수층에게만 허용할 것이 아니라 일반인에게도 개방하면, 물처럼 새어나가는 해외 조기 유학생들을 일부라도 수용할 수 있을 것이다.
선진국으로 가는 험난한 길의 맨 앞줄에서 비바람을 헤쳐나갈 주역은 우수한 인재들이다. 그들이 혼신의 힘을 다해 실력을 연마할 환경을 우리 사회는 하루 속히 마련해 주어야 한다.
박 명 희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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