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목포 북항에서 카페리호를 타고서 1시간40분. 흑산도와 홍도로 향하는 길목에 자리한 허다한 섬들처럼 그 섬은 그렇게 옹송그리고 앉았다. 겨울이면 '시금치 섬'이 된다는 전남 신안군 비금면 비금도. 섬 형세가 나는 독수리를 닮아 '비금(飛禽)'이라지만 보는 사람 마음이다. 뻘밭을 뚫고 오른 시금치를 닮았다 해도 무방하다. 섬은 겨울이 더 푸르다. 바닷바람을 맞고 커온 해송의 푸르름은 언제부터인가 솔잎 흑파리떼로 인해 위용을 잃었다. 다도해해상국립공원 안에 포함된 섬의 서쪽 해안이며 섬 가운데에 우뚝한 기린산, 선왕산 따위는 피부병을 앓는 듯 듬성 듬성 누렇다. 하지만 평지만큼은 시금치에 덮여 눈 시리게 푸르다.20일 오전9시. 서울로 올라갈 시금치 트럭이 늘어선 비금면 가산 선착장에 내렸다. 덜컹대는 버스로 면사무소가 있는 읍동 마을까지 가는 20분. 눈에 들어오는 평평한 땅은 소금밭(염전·鹽田) 아니면 시금치 밭이다. 이곳 사람들은 이곳 시금치를 섬의 풀, '섬초'라고 불렀다.
'비금 섬초'는 해풍에 버무려지고 뻘밭 기운을 머금어 한번 입을 대본 이들이 잊지 못할 달콤함과 싱싱함을 품게 된단다. 쌀보다 비싸고 육지 시금치의 2배 가격을 불러도 없어서 못 팔 정도란다. 93년 '비금 섬초'로 당당히 상표등록까지 했다. 그래서 섬초는 재배면적 500여㏊라는 공식 통계를 넘어 "크지도 작지도 않다"는 섬 전체를 덮은 듯 보였다.
"겨울에 이렇게 푸른 기운이 덮은 곳은 처음 본다"고 감탄사를 토해내자 버스 옆자리 노파가 "올해는 푸른 것도 아니여"라고 쏘았다. "지난해 얄궂은 날씨 탓에 배려 버렸다"고 했다. 겨울이 제철인 시금치는 8월께 파종, 부지런히 관리해 11월부터 3월에 걸쳐 거둬들인다. 그런데 지난해 9∼10월께 비와 우박이 잦았고 추위도 일찍 찾아왔다. 한창 올라왔어야 할 섬초 상당수가 흙을 뚫지 못했다.
"20년 섬초 농사 지었지만 이런 흉년은 첨이여." 김정용(58)씨는 공급이 달리면서 단가는 올랐지만 농군 마음은 일단 풍년이고 봐야 한단다.
푸릇푸릇한 밭들 사이 알록달록한 색깔은 웅크린 아낙네들이다. 푸른밭에 쪼그린 양이 모이 쪼는 닭 같다. 육지에서 쓰는 낫의 3분의 1 크기 만한 '섬낫' 으로 시금치를 따내던 노파가 고개를 들었다. 노파는 바닷 바람 때문에 덮어쓴 털모자 속 주름 성성한 얼굴로 미소와 한숨을 뒤섞어 내보였다.
"싸라기 밥 먹게 생겼소." 막내가 서른 다섯, 장남이 쉰이란다. 노파는 아들 걱정부터 앞세웠다. 몇 년전에 큰 아들이 대장암 판정을 받고 서울 큰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고 했다. 소금 농사에 시금치 농사로 4형제를 대학까지 보냈는데 이제 아들 병원비로 시금치 판 돈이 들어간단다. 그리고 "빨리 돈을 올려 보내야 고등학교 다니는 큰 아들네 손주들 학원비라도 댈 것인디…"라고 했다.
한참을 걸어 들어가 다다른 섬 서쪽 편 내포마을. 1958년 비금도에서 처음 시금치 농사가 시작됐고 지금도 섬 내에선 상대적으로 질 좋은 섬초가 나는 곳이다. 5남매를 키워 위로 넷을 육지로 시집 장가 보내고 서울서 직장 생활하는 막내 아들만 남았다는 예순 다섯의 아낙네가 스프링클러가 부지런히 돌아가는 밭 한켠에서 오전내 따낸 섬초를 다듬고 있었다. "전세 얻어줄 돈이라도 마련해야 장가를 보낼터인디. 부모라는게 품앗이여. 아기들도 저거 자식 먹여살릴라고 타지서 고생하제. 이러다 가는 거제."
겨울이 푸른 비금도는 여름이면 색을 새하얗게 바꾼다. 섬 동쪽편은 해방이후 남한지역에서 처음으로 천일염을 생산했다는 염전들이 즐비하다. 기온이 떨어지면 소금은 맺히지 않는다. 겨울 염전은 그래서 을씨년스럽다. 설을 쇠고서야 염전 둑을 수리하고 시금치 농사가 마무리될 쯤 본격적으로 소금 농사에 들어간다.
그런데 한 노인네가 벌써부터 소를 부리며 염전을 갈고 있다. 지동마을 박복기(68)씨였다. "새벽에 시금치 따놓고 염전 갈러 나왔다"고 했다. 섬초 3,000평에 염전 3,000여평 농사를 짓는다는 박씨는 "늙어서 기계를 못부려 소를 부린다"며 "시간 있을 때 미리 미리 해둬야 올 농사가 쉽다"고 했다.
신안군의 다른 섬들과 마찬가지로 이 섬의 아이들 대부분은 중학교를 졸업하면 부모 품을 떠나 목포의 고등학교로 진학한다. 형제 중 한명이 서울 등으로 대학진학이라도 할라치면 세집 살림 하기 일쑤다. 도시에서도 어렵다는 등록금에 하숙비를 바리바리 챙겨보낼 수 있었던 것은 여름의 소금, 겨울의 시금치가 있어서였다. 비금도의 교육열은 여느 육지 도시 못지 않고 대학생 자식 없는 집을 찾기가 어려울 정도로 대학 진학률도 높다고 했다.
그리고 이 섬 아낙네의 9할이 허릿병에 관절염을 앓고 있다고도 했다. 뙤약볕 아래서 여름 한철 소금 농사로 진을 빼고서 쉴 틈도 없이 이번엔 찬바람 속에 시금치를 캔다. 몸이 성할리 없다. "무릎에 물 빼낸 이가 허다하고, 약을 안 달고 다니는 이가 없소." 시금치 밭에 앉았다 일어서는 폼이 여간 불편해보이지 않는 심청수(62) 할머니는 허리부터 두들겼다.
명절을 맞아 오랜만에 고향을 찾는 아들 딸들은 부모들이 싸주는 시금치를 쉽게 못 들고 간단다. 어머니 아버지의 겨우내 고통이 푸른 시금치를 키웠음을 그들은 잘 알기 때문이다. 그 고통이 비금도의 겨울을 푸르게 했을 터였다.
비금섬초 유통의 90%를 잡고 있다는 농협을 찾아 면소재지인 읍동마을로 들어섰다. 4,500명이 사는 면의 면소재지 치고는 형편없다. 술집이며 식당도 손꼽을 정도다. 그나마도 낚시하러 섬을 찾는 관광객들을 보고 들어선 것이라고 했다. 농협직원 말처럼 "한해 시금치로 50억원, 염전으로 50억원이 들어오는 섬"이라는데 썰렁하기 이를 데 없다.
"사람들이 술먹고 앉았을 시간이 없어서 그렇지라. 여름에 염전에 논농사 짓고 겨울이면 시금치를 해대니 잠시라도 놀 시간이 있소?" 전날 넘긴 섬초 대금을 찾으러 농협에 들른 김대성(58)씨의 얘기다. "쉴 틈없이 일해 돈많이 벌었겠다"는 농담에 김씨가 대꾸했다. "돈이 서울서 왔다가 서울로 도로 가버려요."
/비금도=글 이동훈기자 dhlee@hk.co.kr
사진 고영권기자
■"섬초"맛 비결은 게르마늄 토양
아프가니스탄 주변 중앙아시아가 원산지인 시금치는 알카리성 토양을 좋아하고 내한성이 강하다. 이 같은 시금치 생육에 비금도는 비교적 잘 들어맞는 환경을 갖췄다. 그 외에 다른 시금치 산지보다 비금도가 갖는 '플러스 알파'는 게르마늄 토양 성분이라고 한다.
한반도에서 게르마늄 토양이 분포된 곳은 개마고원과 개성, 지리산 인근 그리고 신안군 등 몇군데에 불과하다. 신안군 농업기술센터 비금지소 오정열 소장은 "육지 시금치에 비해 독특한 비금 섬초 맛의 비결은 게르마늄 토양"이라고 말했다. 비금도 사람들은 "다리(서남문대교) 하나사이로 연결된 인근 도초도에서 시금치를 키워도 비금 섬초 맛이 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비금섬초는 40여년 비금도에 뿌리를 내려 이 곳 환경에 적응하면서 독특한 종이 됐지만 최근들어 그 품질이 떨어지고 있다는 우려도 높다. 체계적인 종자 관리가 이뤄지지 않다보니 농가들이 당장 눈앞의 수익에만 신경을 써 열성 종자들이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올해의 경우 흉작이 되면서 고유의 재래종보다 맛이 떨어지는 조생종 시금치 재배농가가 급격히 늘어났다. 농협 차원에서 본격 종자관리에 나서고 있지만 섬초는 비금도 정착 40년만에 최대 위기를 맞고 있다.
/이동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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