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열(崔冽·54) 환경운동연합 사무총장은 국내 환경운동의 역사와 궤를 같이한 대부이자 산증인이다.1982년 환경운동연합의 모태이며 우리나라 최초의 환경운동단체인 '한국공해문제연구소'를 창립한 후 환경운동의 중심에 우뚝 서 왔던 그가 다음달 사무총장직을 서주원(徐注源) 신임 총장에게 맡기고 퇴임한다.
"공해라도 좋다, 배불리만 먹고싶다"는 정서가 팽배했던 그 시절 일찌감치 환경문제에 눈을 뜬 선각자였던 그는 공권력, 기업등과 치열한 투쟁을 계속하며 수많은 난관을 헤쳐 나왔고 환경운동을 시민운동의 큰 축으로 자리매김하는 역할을 했다.
1993년 공해추방운동연합과 7개 지역 환경단체가 결합해 창립된 환경운동연합은 그가 이끈 10년 동안 시민환경연구소, 에너지대안센터 등 5개 부설기관에 47개 지역조직과 8만9,000명에 이르는 회원을 가진 국내 최대 환경단체로 성장해왔다. 환경재단 상임이사로 자리를 옮겨 후배 활동가를 양성하는데 주력할 계획이지만 '대간사 1호'라는 직책으로 여전히 현장을 지키겠다는 각오를 다지는 최열 총장을 22일 서울 누하동 환경운동연합 사무실에서 만나보았다.
―이제 2선으로 물러나시는 건가요.
"사무총장직을 물러날 뿐이지 환경연합을 떠나는 것은 아닙니다. 식품 안전을 담당하는 대간사를 맡게 돼 오히려 현장으로 돌아가는 기분이에요. 환경연합이 생태계 문제는 집중적으로 조명하면서 많은 성과를 거뒀지만 국민건강을 다루는데 소홀했던 면이 있었어요. 수입농산물, 유전자조작식품, 인스턴트 식품 등의 문제를 본격적으로 부각시킬 생각이에요."
―10년간 환경연합을 이끌면서 느꼈던 소회는 남다를 텐데요.
"환경연합이 환경운동을 제대로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시스템을 갖춰가는 기간이었던 같아요. 92년 리우환경회의에 45명의 환경운동가들이 함께 가서 절실하게 느꼈던 것은 전지구적 차원에서 환경문제가 중요한 과제가 되고 있다는 것이었죠. 당시 국내에서 환경운동이 막 싹이 틀 무렵이었는데, 그마저도 지역단체 수준으로 나눠져 있었죠. 그래서 국내만이라도 전국적인 활동을 하자며 모인 게 환경연합이었어요.
초창기 환경운동의 전문성을 기르기 위해 시민환경연구소가 만들어졌고, 조금 후에 방학숙제니 리포트 과제 등으로 환경정보를 얻으려는 학생 시민의 문의가 잇따라 정보센터가 세워졌죠. 차츰 환경 피해자들의 각종 민원이 쏟아졌어요. 이를 지원하기 위해 환경법률센터가 만들어지는 등 환경운동이 자리를 잡기 시작했어요. 이후에 환경교육센터, 도요새 출판사 등 교육 출판 쪽으로 발을 넓혔고, 비판만 아니라 대안까지 제시하려는 목적으로 에너지대안센터로 만들어졌죠. 척박한 땅에서 어느 정도 안정적인 틀은 마련된 셈인데, 환경운동연합을 이끌면서 토양을 만들었다고 봐요."
―우여곡절이 많았을 텐데 가장 보람 있었던 일은 무엇인가요.
"역시 2000년 동강댐 백지화 운동 때였어요. 예전에는 사건이 터진 다음에야 문제의 심각성을 알리고 나섰지만 환경은 이미 훼손될 대로 훼손된 상태지요. 하지만 동강댐은 사전에 국민적인 반대운동으로 확산됐어요. 환경연합 사무실 앞마당에서 33일 동안 각계 인사들이 농성할 때였는데, 전국의 어린이들이 보내온 손수건으로 농성장 마당이 온통 노란 물결로 물들었어요. 또 인근 중국집에서는 무료로 음식을 보내오고, 국민 성금도 쏟아져 들어왔어요. 마침내 동강댐이 백지화됐을 때 기분은 이루 말할 수 없었죠.
한국일보와의 인연도 빼놓을 수 없죠. 94년부터 한국일보와 함께 6년동안 벌였던 21세기 녹색생명운동 캠페인은 유례가 없는 환경운동으로 기록될 겁니다. 신문사에선 국장부터 팀원이 됐고, 환경운동가 6명이 상근하면서 파격적인 지면을 펼쳤죠. 정부도 하지 못한 대기오염지도를 만드는가 하면, 지구의 날 행사, 한강껴안기 운동 등 많은 성과를 일궈냈습니다. 국제회의에서 이 사례를 보고 한국이 이토록 역동적인 곳이라며 감탄을 터뜨렸으니까요."
―아쉬웠던 일도 많았죠.
"딸이 초등학교에 다닐 무렵에 어느 기자가 딸에게 너도 환경운동가가 되고 싶냐고 물었어요. 근데 딸이 대뜸 '싫어요'라는 거에요. '아빠는 매일 새벽에 나가고 잘 때 들어오면서 환경운동을 오래 했는데 환경이 더 나빠졌어요'라고 대답하지 않겠어요. 마음이 착잡해지더군요. 운동만으로 환경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자괴감이 들었습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새만금 간척사업 문제예요. 새만금을 살리기 위해 환경운동단체들이 수년여에 걸쳐 혼신의 힘을 다했죠. 세계 각국의 환경단체들이 간척 반대의 메시지를 보내왔고, 전 국민적 반대운동이 일어났지만 결국 수포로 돌아갔습니다. 어이가 없었던 것은 2001년 지속가능발전위원회에서 새만금 문제를 토론해 안을 만들기로 했는데, 최종 토론회를 갖고 있는 도중에 총리실에서 관계부처 회의가 열려 새만금 간척사업을 추진키로 결정했다는 보도자료가 배포된 거예요. 배반당했다는 느낌이었죠. 그 무렵 대통령을 만나 새만금이 간척되면 갯벌이 다 죽으니 역사적 결단을 내려야한다고 촉구했지만, 대통령은 '전문가가 아니라서 잘 모르겠다'는 대답만 하더군요. 그때 더 이상 안되겠구나 생각했어요. 그래서 위원회에 사표를 쓰고 나왔죠."
―새만금 중단을 촉구하는 종교인 기도회가 열리는 등 환경운동가 사이에서 다시 새만금사업을 중단시키겠다는 분위기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정부는 새만금 문제는 이미 결정된 사항이라며 요지부동입니다.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예전에 갯벌의 가치를 몰랐을 때는 매립을 해서 논으로 가꿨지만 지금은 전세계적으로 갯벌을 보호하고 있습니다. 독일도 히틀러시대까지만 매립을 했지만 이후 보존정책으로 바뀌었죠. 지구상에 논은 굉장히 많지만 갯벌은 귀합니다. 그 생태적 가치도 엄청나고요. 갯벌을 6조원의 돈을 들여서 논으로 만드는 것은 금덩어리를 쇠덩이로 만드는 정책이나 다름없어요. 새만금 문제는 대통령이 결단해야 할 사항입니다. 이제 생태적 결단을 내려야 합니다. 이 문제는 노 정부의 환경 패러다임을 가늠할 수 있는 시험대가 될 것입니다."
―시민단체 사이에서는 노 정부에 대한 기대가 높지만, 환경 단체들은 의외로 불만이 높은 것 같습니다.
"21세기의 가장 큰 화두는 지속가능한 발전입니다. 길을 닦고 자원을 빼다 쓰고, 건물을 세우는 '토목국가'로는 더 이상 후대에게 물려줄 것이 없습니다. 환경친화적인 발전을 도모하는 것이 전세계적인 이슈예요. 하지만 새 정부의 10대 국정개혁과제에 이런 내용이 전혀 없습니다. 환경문제는 쾌적한 삶의 질 향상 정도로 언급돼 있는데, 아직도 환경문제를 쓰레기 처리, 주변 청소 정도로 여기는 20세기적 발상이죠. 2002년 세계경제포럼의 환경지속성 평가결과 우리나라가 142개국 중 136위를 했습니다. 경제수준이 세계 10강이라면서 환경은 꼴찌 수준이예요. '축구 16강'엔 그렇게 목을 매달아왔으면서 '환경 16강'은 왜 등한시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환경운동가로 책임감도 클 텐데요. 최근 인터넷 장관추천에서 환경부 장관으로 가장 많이 거론되는데.
"전혀 관심 없습니다. 주변에서 뭐 국회의원 할 때가 아니냐고 그러는데 그동안 제가 걸어온 길을 벗어나면 더 이상 최열은 최열이 아니에요. 그런 말 들으면 늘 한길을 가겠다고 말해왔습니다."
―앞으로 환경운동의 방향을 어떻게 보십니까.
"이제 국내에만 머물지 말고 해외로 눈을 돌려야 할 때입니다. 환경문제는 전지구적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환경연합도 세계적 환경단체인 '지구의 벗'에 가입해 활발한 대외활동에 주력하고 있죠. 특히 북한문제도 환경적 차원에서 접근할 수 있습니다. 에너지 문제로 심각한 위기를 겪고 있는 북한이 태양력, 풍력 등 대안에너지를 개발한다면 오히려 위기가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최근 창립한 환경재단 상임이사로도 활동하시는데요.
"활동가 3년이면 파김치가 되고, 5년이면 머리가 비고, 7년이면 가슴에 구멍이 뚫린다고 합니다. 후배 활동가들이 안정적인 기반 위에서 활동하고 공부할 수 있도록 지원할 계획이에요."
/대담=송용창기자 hermeet@hk.co.kr
● 약력
1949년 대구 출생
1975년 강원대학교 농화학과 졸업
1975년∼79년 명동성당 사건으로 구속 옥고(긴급조치 9호)
1979년∼81년 명동YWCA위장 결혼사건 옥고(포고령 위반)
1982년∼87년 한국공해문제연구소 설립, 소장역임
1992년 유엔환경개발회의 한국위원회 상임집행위원장 브라질 리우 환경회의 한국민간대표단장
1993년∼2003년 환경운동연합 사무총장 역임 현재 환경재단 상임이사, 에너지시민연대 상임공동대표, 시민환경연구소 이사장 등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