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힘인가.앤드리 애거시(미국)가 요즘 펄펄 날고 있다. 33살의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다. 한때 퇴물 취급을 받던 그가 왕년의 테니스여왕인 슈테피 그라프(독일·34)의 내조를 받아 제2의 전성기를 열어가고 있다. 그라프는 88년 4대 메이저를 석권한 이후 99년 은퇴할 때까지 메이저 22승을 달성한 대스타.
애거시는 멜버른에서 계속되고 있는 호주오픈에서 매 경기마다 퍼펙트한 승리를 엮어내고 있다. 니콜라 에스퀴드(프랑스)와 맞붙은 3회전을 빼고 4강 진출 때까지 단 한 세트도 내주지 않았다. 2회전에서 이형택(27)과의 경기를 지켜본 삼성증권 주원홍 감독은 "체력과 기량 모두 전성기를 능가하는 것 같다"고 평했다. 8강전에서 0―3로 완패한 세바스티앙 그로장(프랑스·세계 16위)은 "나는 위대한 애거시에게 졌다"고 고백했다.
애거시는 21일 "이번 대회 우승으로 호주오픈 통산 4승을 이룰 경우 5월말 프랑스 오픈에서 혼합 복식조로 함께 출전하기로 아내와 약속했다"고 밝혔다. 현재의 페이스라면 그의 호주오픈 제패가 확실해 사상 첫 테니스스타 부부가 한 팀을 이룬 경기를 보게 될 전망이다.
애거시의 테니스 인생은 그라프를 만나면서 다시 꽃피기 시작했다. 피트 샘프러스(미국)와 함께 90년대 세계 테니스계를 양분해온 그는 97년 미국의 인기 영화배우 브룩 쉴즈와 결혼한 뒤 부진의 늪에 빠졌다. 순위도 100위권 밖으로 밀려나 "그의 시대는 갔다"는 말이 나왔다. 99년 쉴즈와 갈라선 뒤 그라프와 열애를 시작한 그는 그 해 프랑스 오픈과 US오픈 등 2개 메이저 우승컵을 따냈고, 2000·2001년에는 호주 오픈에서 2연패를 이뤘다. 그라프와 함께 훈련해 온 덕분이었다. 애거시는 2001년 10월 그라프와 결혼, 지금은 15개월 된 아들을 두고 있다 . 애거시는 "아내는 여전히 테니스를 잘한다. 연습경기를 하면 가끔 내가 진다"고 말했다. 그라프는 99년 당시 존 맥켄로(미국)와 함께 프랑스 오픈 혼합복식에 출전, 4강에 진출했으나 부상으로 경기를 포기한 뒤 은퇴했다. 사랑의 힘으로 남편을 다시 정상에 올려놓고 있는 그라프가 4년 만에 어떤 복귀전을 치를지 벌써부터 기대된다.
/박진용기자 hub@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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