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농협 단위조합이 발행한 현금카드의 비밀번호 유출로 고객 돈이 몰래 빠져나간 사건은 신용사회의 뿌리를 흔드는 것이어서 충격적이다. 농협은 지난해 12월26일 이전에 전국 단위조합에서 발급한 모든 신용카드와 주류구매카드 1,100만장을 전면 교체한다고 밝혔다. 농협은 '고객만이 알고 있는 유일한 암호인 비밀번호가 유출되는 사고가 발생하고 있다'는 안내문을 전국의 예금주들에게 보냈다. 비밀번호가 새나가 금융기관이 고객 카드를 모두 바꾸기는 이번이 처음이다.이번 사고는 카드 관리를 잘못한 개인에게 일차적 책임이 있지만, 농협 등 관계 기관의 책임도 크다. 카드 발행사들은 엄청난 수익을 올리면서도 예상되는 사고 예방을 위한 조치에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다. 이번 교체 대상이 '오래돼 보안성이 떨어지는' 카드라는 점이 이를 단적으로 증명한다.
정부는 신용사회 정착과 세수 확보 등을 내세우며 카드 사용을 적극 권장하고 있으나 부작용에 대한 대책 마련에는 미흡했다. 모든 책임은 사용자가 지라는 식이다. 금융감독원의 대책을 보면 과연 정부가 신용사회 정착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지 의문이 간다. 금감원 관계자는 "지난해 말 농협으로부터 사고 보고를 받고 자체 조사를 지시했고, 조사 결과 내부 소행은 아닌 것으로 드러나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다"고 말했다.
사건의 본질이 무엇인지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단순 절도사건 정도로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 현금카드와 신용카드의 복제를 방지할 수 있는 대책 마련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뒷북도 한참 만에 친 셈이다.
각종 카드가 생필품이 된 지는 이미 오래됐다. 때문에 이번 사건은 그 전말이 반드시 밝혀져야 하고, 책임을 물어야 한다. 카드 교체 등으로 마무리될 성격은 결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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