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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주 기자의 컷]애매모호한 영화의 "재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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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주 기자의 컷]애매모호한 영화의 "재미"

입력
2003.01.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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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회가 끝나고 나면 극장에서 만난 평론가들이나 기자들은 제작자나 감독, 배우가 들으면 거의 기절할 얘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하게 된다.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은 '재림'을 '재앙'으로 바꿔 제목을 부르고, 기대를 모았던 멜로 영화 '중독'을 보고 나서 '중독이 아니라 식중독'이라고 말이 나와 듣는 이들을 경악케 했다. '밀애'는 '격정 멜로'가 아니라 '걱정 멜로', 스릴러 'H'에 실망한 또 다른 이는 "'H'가 '허걱'의 줄임말이 아니냐"는 말로 영화를 '박살'냈다.이런 테러 수준의 말장난은 물론 영화 관계자들의 귀에 들어가지 않도록 철저히 입 단속하지만, 이 단계가 되면 영화관계자들도 이미 '감'으로 분위기를 파악한다. 흥미로운 것은 영화에 대한 평가란 대부분 엇비슷해 이런 '말장난'을 극복하고 흥행에 성공한 영화는 별로 없다.

"그 영화 재미있나?" "글쎄, 별로" "그런데 왜 '조지지' 않는 거야?" 많은 사람들이 영화 리뷰에 대해 갖는 불만은 이런 것이다. 물론 직설화법의 단어나 말을 쓰면 속 시원히 읽는 맛은 있을 것이다. 그런데, 한 숨만 돌리고 생각해보면 그 '재미있다'는 '적당히'라는 말처럼 애매하기 짝이 없다.

각 영화 잡지가 운영하는 인터넷 사이트는 관객들 반응의 바로미터다. 영화에 대한 리뷰의 숫자는 바로 영화에 대한 관심의 증거이고, 많이 얘기되는 영화일수록 관객이 많이 드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각론으로 들어가면 얘기는 또 달라진다. "'도대체 '영웅'은 한 얘기하고, 또 하고 재미없더라"는 글을 올리면 "당신 영화를 모르는군. '영웅'의 구성은 구로자와 아키라의 '라쇼몽' 에서 따온 거야" 식으로 치고 받는다. 지난해 평론가들로부터 외면 받았던 '남자 태어나다'를 보고 "너무 진솔한 얘기에 감동이 짠!"이라는 네티즌 평가를 보고 나면 영화의 재미란 '간을 적당히 맞추라'는 요리책의 지시처럼 난해하고, 심지어 철학적인 해석이 필요하다.

영화의 재미란 '절대 반지'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비밀의 방'처럼 자신만의 고유한 영역이 있게 마련이다. 그리고 보면 영화란 마치 어울리지 않는 커플의 연애를 지켜 보는 일과 비슷하다. "걔 예쁘냐" "얼굴은 별로야" "그럼 몸매는 좋으냐" "키가 작아" "그런데 왜 사귀냐" 얼굴과 몸매가 '이중 고문' 수준이라도 누군가를 사귈 이유는 99가지도 넘는 게 인생이고 연애? 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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