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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돌이키면 여운남는 작품"/이중간첩 한석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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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돌이키면 여운남는 작품"/이중간첩 한석규

입력
2003.01.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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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깍쟁이 같아서인지. 동료나 스태프에게 실례하고 싶지도, 피해를 주고 싶지도 않은데. 하긴 그런 모습이 주위에 불편함을 줄 수도 있겠다.""한석규 같은 배우가 되고 싶다"는 남자 배우가 많다. 일본 관객들조차 "한석규('8월의 크리스마스') 때문에 한국영화를 다시 보게 됐다"고 말한다. 그러나 충무로에서는 한석규를 두고 편이 갈린다. 그는 안 하는 게 많다. 광고, 영화도 참 많이 고르고 TV 쇼에 나가 우스갯소리를 하는 모습은 상상도 못한다. 그러나 단지 이것 때문만은 아니다. 한석규에 대한 반감은 그가 '딴따라'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버렸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딴따라는 그저 시키는대로 하면 된다' 하는. 그러기에 그는 생각이 많다.

"대학 때 이덕화 선배가 출연한다는 나이트클럽에 가면 공짜 술 먹는다는 학교 선배들의 말에 같이 간 적이 있다. 블루스 곡으로 김태화의 '안녕'이 나오는데 멋있었다. 이후 애창곡이 됐다. 노래나 영화는 '추억'을 남겨야 하는 것 같다. '추억에 남는 영화'라는 말을 자주 하는데 공연한 소리가 아니다. 그런 기준만은 꼭 지키고 싶다."

영화 '이중간첩'에서 한석규는 딱 한석규다. 생각이 많은 듯한 눈빛과 말투가 그대로다. "여태까지 영화에서 보인 것은 대부분 한석규였다. 영화 속 인물을 나에게 맞추었다. 언젠가는 '의식하는 무의식의 연기'를 해볼 날이 있을까." 반복되는 자연스러움의 식상함을 극복한 연기를 해보고 싶다는 아주 큰 야망이다. '일상적 연기'의 대명사인 그가 영화에 거는 기대는 어쩐지 몽상가처럼 보인다. '완성도 높은 장르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나 '넘버 3'는 그걸 이뤘다. 그 영화들은 작가주의 성향이 있으나, 스타가 나와 좀 더 많은 관객들이 보았다. 이상적이다."

'이중간첩'은 귀순한 이중간첩, 한석규 고소영 주연, 제작비 70억원의 블록버스터지만 전형적 첩보영화에서는 몇 발 떨어져 있다. "보는 순간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영화보다는 문득 뒤돌아 생각해보면 여운이 남는 영화다. 감정을 드러내기보다는 안으로 숨기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얘기라 그럴지도 모른다. 멜로와 액션을 더 강화하자는 얘기도 있었으나, 그랬으면 가짜 얘기가 됐을 것이다."

한석규식 상업영화인 '이중간첩'은 그가 3년 2개월만에 관객에게 보이는 작품이다. 그런 부담 때문일까, 세월 때문일까. 전보다 얼굴이 갸름해졌다.

/박은주기자 jupe@hk.co.kr

● 영화 "이중간첩"

그에게 조국은 없었다. 목숨을 바쳐 충성한 북도, 그를 이용해 먹은 남도 결국은 그를 버렸다. 돌아갈 조국도, 머물러 있을 조국도 없는 그는 최인훈 소설 '광장'의 주인공 명준처럼 제3국을 선택한다.

군사독재가 이 땅을 잿빛으로 물들인 1980년, 동 베를린을 통해 위장 귀순해 남한 정보기관에서 일하던 북한 대남사업부 출신 인민군 소좌 림병호(한석규)는 그러나 30년 전 명준이 아니다. 제3국으로 가는 배 안에서 자살하지 않는다. 살려고 발버둥친다. 지금(이데올로기)까지와 다른 '살아야 할 이유(사랑)'가 있다. 그래서 지구 반대편 이국 땅 브라질로 숨어 들지만 조국은 그를 그냥 두지 않는다. 그 조국이 남이냐, 북이냐는 중요하지 않다. 우월성이나 선악의 편가르기가 목적이 아니다. 그런 점에서 '이중간첩'(감독 김현정)은 '쉬리' 나 '공동경비구역 JSA' 에서 또 한걸음 나아간다. 영화적 재미를 위한 극단이나 과장, 현실과 거리가 먼 설정도 가능하면 배제했다.

연락책이자 고정 간첩인 방송국 아나운서 윤수미(고소영)가 자신을 사랑해 지령을 전달하지 않아 위기를 맞은 림병호. 그 일로 가차없이 그를 버리려는 조국(북한)이 그의 신념을 흔든다. 남한 또한 무엇이 다른가. 그가 위장 귀순을 하며 부르짖은 '자유의 땅'은 이데올로기 수호란 명분 아래 폭력을 자행하고, 평범한 유학생을 인혁당 사건에 옭아매고, 마침내 림병호까지 희생양으로 삼으려 한다. 사랑은 고사하고, 생존조차 절박한 '이중간첩'의 존재가 분단현실을 더욱 아프게 드러낸다.

때문에 '이중간첩'은 무겁다. 영화는 처음부터 분단의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는 어두운 표정의 림병호와 어색하리만치 감상적인 수미에게서 쉽게 빠져 나오지 못한다. 입을 '앙' 다문 모습으로 상징되는 한석규의 결연한 의지와 정보부 간부인 백승철 역을 맡은 천호진의 인상적 연기에도 불구하고 외신 기자의 존재처럼 첩보물로 보기에는 구성과 논리의 허점이 발견되는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이대현기자 leed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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