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원들을 상대로 설득 작업에 나선 사람은 다름 아닌 내 아들, 송하경(宋河鯨) 사장이었다. 당시 송 사장은 86년 미국 로체스터 대학원을 졸업하고 한국으로 돌아와 모나미에 말단 사원으로 입사, 과장 차장을 거쳐 이사로 근무하고 있었다. 송 사장은 내가 퇴직금 누진제 문제로 고민하고 있을 때 자진해서 자신이 노조원들을 설득해보겠노라고 나섰다. 나는 반신반의하면서도 송 사장의 젊은 패기와 성격을 잘 알기에 모든 걸 일임했다. 그 뒤부터 송 사장은 아예 서울 사무실이 아니라 안산 공장으로 출근하기 시작했다. 매일 새벽 5, 6시면 어김없이 공장에 나타나 업무를 보고 노조 간부들과 노조원, 그리고 일반 직원들을 상대로 끈질긴 설득전을 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송 사장은 이런 말로 직원들을 설득했다고 한다."퇴직금도 회사가 있어야 드릴 수 있는 것 아닙니까. 지금처럼 퇴지금 누진제를 적용하면 시간이 지날수록 회사는 어려워질 수 밖에 없습니다. 내가 지금 받을 수 있는 액수가 커지면 커질수록 미래 모나미의 후배들에게 돌아갈 몫이 줄어듭니다. 곰곰히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그리고 진정 회사와 노조, 그리고 여러분들이 함께 공존 공생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 선택해 주십시오."
송 사장의 노조원 설득 작업은 1년 동안 계속됐다. 송 사장은 그 기간의 절반 이상을 공장에서 숙식하며 지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말처럼 결국 노조는 퇴직금 누진제를 포기했다. 송 사장은 어떠한 편법도 동원하지 않고 오직 정성과 진심으로 노조를 상대해 아무런 충돌 없이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을 보여주었다. 그 과정을 지켜본 나는 흐뭇하지 않을 수 없었다. 누군가가 회사를 위해 열심히 뛰는 모습을 본다는 것은 더할 나위 없이 즐거운 일이지만, 솔직히 내 혈육이 누구나 인정할 만큼의 능력을 발휘했다는 사실이 나를 더욱 기쁘게 했다.
나는 3명의 아들을 두었지만 그들에게 단 한번도 아버지가 평생을 바쳐 키운 회사에 들어오라고 권유한 적이 없다. 내가 입사를 권유한 적도 없고, 그렇다고 '너희들이 회사를 이끌어 나가야 한다'고 언질을 준 적조차도 없다. 왜냐하면 회사 규모가 커지고 몇 차례 위기까지 겪으면서 모나미는 결코 나만의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내가 물러날 때가 돼서 누군가가 이 회사를 경영해야 한다면 회사 간부든, 외부 전문가든, 내 아들이든 정말 능력 있는 사람에게 물려줄 것이라고 다짐하곤 했다.
송 사장이 말단 사원으로 입사한 뒤 나는 업무에 관한 한 일정한 거리를 두고 냉정하게 송 사장을 관찰하려 애썼다. 송 사장이 남 못지않은 능력을 갖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남과 비슷한 능력만으로는 부족했다. 그래서 나는 더욱 더 엄격하게 나름대로의 기준을 세우고 송 사장의 능력을 검증했다.
내가 지켜본 송 사장은 항상 겸손했다. 자신보다 나이는 많지만 직급이 아래인 사람에게 언제나 깎듯이 존대를 했다. 절대 자신을 내세우는 법이 없었고, 사장 아들이라고 해서 특권이나 특혜를 누리려 하지도 않았다. 내가 송 사장에게 모나미를 물려주고 2선으로 물러나도 좋겠다는 생각을 갖게 된 것은 바로 송 사장이 노조를 설득, 퇴직금 누진제 문제를 원만히 해결하고 난 직후였다. 나는 인내를 가지고 자신을 낮추어 가며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는 송 사장의 자세에서 최고 경영자로서의 자질을 확인했다. 1997년 1월 시무식 날, 나는 전 직원들이 모인 자리에서 일선 경영에서 물러나 회장에 취임했다. 송 사장은 자신의 능력과 성실성으로 내 뒤를 이어 모나미의 '대권'을 잡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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