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공덕동에 사는 대학생 박모군(21)은 지난 주말 친구의 '피파2003' 게임 CD를 복사했다. 그런데 설치까지만 해도 아무 문제없던 게임이 'CD를 넣으세요'라는 메시지만 반복하며 실행이 되지 않았다. 혹시 복사가 잘못됐나 싶어 다시 시도해 봤지만 결과는 마찬가지. 알고 보니 원본에 걸린 '세이프디스크'라는 복사 방지장치 때문이었다.CD 재기록장치(CD-RW)의 보편화로 CD복제가 걷잡을 수 없이 늘자 참다 못한 소프트웨어 업체들이 다양한 복제방지기술을 도입하고 나섰다. 불법 복제가 많은 게임 소프트웨어는 물론이고, 윈도와 사무용 프로그램 등에까지 확산되고 있다.
게임소프트웨어에는 완벽한 CD복사를 방해하는 기술이 주로 쓰인다. 게임 실행에 필수적인 몇몇 파일을 원본 CD의 구석에 몰래 숨겨놓는 방법이 대표적이다. 정확한 위치를 지정해 주지 않으면 전혀 읽을 수 없기 때문에 복사과정에서 그냥 지나치게 된다. 이렇게 복제된 게임 CD는 겉보기엔 멀쩡하지만 핵심 파일들이 빠져 있어 실행이 되지 않는다. 축구게임 '피파2003', '디아블로', '워크래프트3' 등 최근 출시된 대부분의 게임에 적용되어 있다.
레이저로 뚫은 CD의 미세한 구멍으로 원본을 확인하는 방법도 있다. 아무리 강력한 CD-RW도 레이저로 만든 구멍까지 복사할 수는 없기 때문에 복제판과 원본이 확연히 구분된다. 구멍의 위치와 크기가 대단히 정교해 보통 기술로는 흉내내기도 힘들다. 프로그램이 실행될 때마다 CD를 확인해 구멍이 없으면 복사판으로 인식하고 실행을 멈춘다. 제작이 까다롭고 비용도 많이 들어 고가의 기업용 소프트웨어에 많이 사용된다.
정품 구입시 주어지는 고유번호(CD키)를 이용해 복제품을 무력화시키기도 한다. 잘 알려진 예가 '국민게임'으로 불리는 '스타크래프트'다. 이 게임은 CD키를 입력하지 않으면 인터넷 멀티플레이어 대전(배틀넷)을 할 수가 없다. 원본의 CD키를 알아내 입력하더라도 이미 등록되어 있는 번호면 인증이 안된다. 일정기간 테스트 후 정품을 구입하게 하는 셰어웨어도 이와 유사한 방법을 사용한다. 한 달 남짓한 테스트 기간에는 얼마든지 복사해 써도 상관없지만 이 기간이 지나면 '사용자 등록을 하십시오'라는 메시지가 나오면서 주요 기능을 쓸 수 없게 된다.
최근에는 PC의 고유 번호를 이용해 사용자 등록을 하는 '디바이스 인증' 기술이 새로운 복제방지책으로 주목 받고 있다. '윈도XP'와 '한글2002SE'에 채택되어 화제를 모은 이 기술은 소프트웨어 설치시 PC에 내장된 고유정보(시리얼 넘버)와 자신의 등록번호를 암호화해 소프트웨어 제작사의 서버에 등록해 놓고 실행될 때마다 비교하는 방식이다. 만약 소프트웨어를 복사해 다른 컴퓨터에 설치하면 PC의 고유정보가 서버에 미리 저장된 암호와 일치하지 않으므로 프로그램 실행이 되지 않는다.
이처럼 강력한 복제방지기술이 속속 등장하자 이를 무력화하는 첨단 복제기술도 나왔다.
최근 용산에서 팔리고 있는 일부 CD-RW는 '클론CD'라는 CD복제 프로그램과 함께 사용할 경우 CD 원본의 숨겨진 데이터까지도 완벽하게 복사해내는 기능을 지닌 것으로 알려져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또 첨단 복제방지 장치라는 디바이스 인증 방법도 선보인지 1년 만에 정품 인증 장치를 파괴하는 '크랙 파일'이 나돌고 있어 조만간 무력해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전문가들은 이를 두고 '창과 방패의 싸움'이라는 반응이다. 그러나 이 '방패'마저 없으면 소프트웨어 산업은 불법복제의 창날에 쓰러질 수밖에 없다. 한국마이크로소프트 권찬 마케팅부장은 "복제방지 기술에도 한계가 있다"며 "소프트웨어도 상품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소비자들의 성숙한 소비윤리가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정철환기자 ploma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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