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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청송군 주왕산/겹겹 바위병풍마다 주왕의 恨 "절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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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청송군 주왕산/겹겹 바위병풍마다 주왕의 恨 "절절"

입력
2003.01.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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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동쪽으로 향한다. 눈을 보기 위해서다. 지난 주말 태백산과 대관령은 사람의 행렬로 길바닥이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눈 없는 산을 찾아보았다. 말라비틀어져 버석거리는 낙엽과 눈꽃조차 피지 않은 나목이 도열한 곳. 눈 없는 겨울 산은 어떤 정한으로 다가올까.주왕산(720m·경북 청송군)은 사연이 이름으로 굳어진 산이다. 중국 당나라 덕종 15년(799년) 주도라는 사람이 후주천왕(주왕)을 자칭하며 난을 일으켰다. 그러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군사에 쫓겨 이 산에 숨어들었다. 암굴에서 목숨을 부지하던 주도는 굴 입구에서 낙수에 얼굴을 씻다가 당나라 장수의 화살에 맞아 죽었다. 이후 고려의 나옹화상이 그의 한을 풀어주어야 한다며 이 산을 주왕산이라 불렀다.

그 전의 이름은 석병산이었다. 바위가 병풍처럼 도열해 있다는 뜻이다. 과연 바위가 많다. 직접 바위를 타며 등산을 하는 것은 전문 클라이머가 아니면 불가능하다. 바위산인 주왕산을 감상하는 일반적인 방법은 바위를 바라보는 것이다.

입구에 대전사라는 절이 있다. 이 절의 이름도 주왕의 아들인 주대전에서 빌어왔다. 대전사를 돌아 마지막 기념품점을 조금 지나면 길이 갈린다. 오른쪽으로 길을 잡았다. 주왕산 주봉에 곧바로 오르는 길이다. 이 길은 돌길이 아닌 흙길이다. 가파르다. 꼭대기에 오르기까지 한번도 내리막이 없다. 그래서 대관령 고개처럼 등산로가 지그재그로 나 있다.

정상에 서기까지 시간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는다. 넉넉잡고 1시간. 그러나 땀을 쏙 뺀다. 자주 쉰다. 쉬면서 건너편의 능선을 바라본다. 기봉, 병풍바위 등 수려한 바위 봉우리가 눈에 들어온다.

정상부터 완만한 능선길이 한동안 이어지다가 갑자기 내리막으로 변한다. 일명 칼등고개라는 곳이다. 매표소 안내원은 무척 위험한 코스라고 했다. 불규칙한 계단처럼 이어진 바위 위에 콩자갈만한 돌부스러기들이 빼곡하다. 잘못 디디면 그냥 미끄러지기 십상이다. 눈이나 얼음이 전혀 없어 다행이지만 오를 때보다 더 땀이 난다.

칼등고개는 계곡물에 닿아서야 끝이 난다. 계곡의 모습이 예사롭지 않다. 뿌리가 뽑혀 넘어진 나무들이 태반이다. 계곡물을 가로질렀던 인공구조물들은 휴지처럼 구겨져서 한쪽 구석에 팽개쳐져 있다. 지난해 태풍 루사의 발톱은 주왕산 계곡도 예외없이 할퀴어 놓았다. 이전에는 다리를 타고 건넜겠지만 이제는 얼음을 딛고 계곡을 건너야 한다. 미끄럽긴 하지만 오히려 아기자기한 맛이 있다.

계곡이 끝나는 곳은 제2폭포 근처이다. 제2폭포는 거친 절벽에 만들어놓은 구조물을 타고 들어가야 볼 수 있다. 그 구조물도 태풍에 망가졌다. 그래서 한동안 출입금지이다. 내원마을로 방향을 잡는다. 깊은 산중마을이다. 약 400년전부터 사람들이 살았다고 한다. 험한 산 속에 넓은 분지가 있고 아직도 9가구가 살고 있다. 마을 입구에 경운기가 세워져 있다. 산 속에서 만나는 경운기. 조금 묘하다.

내원마을은 이제 외딴 산마을이 아니라 주왕산의 최고 명물이 되었다. 마을 초입에 두부와 동동주를 파는 주점이 있다. 자리를 잡고 앉았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손두부에 동동주가 나온다. 하산길이 험하지 않기 때문에 마음 편하게 잔을 기울인다.

그리고 돌아본다. 눈 없는 봉우리들은 묘한 빛으로 다가온다. 약간 푸른 빛도 머금은 것 같다. 산마을에 부는 바람도 그리 차갑지 않다. 멀리서 마을 사람이 경운기 시동을 거는 소리가 들린다. 그래 이제 곧 봄이 올 거야.

/청송=글·사진 권오현기자 koh@hk.co.kr

● 주왕산 산행법

주왕산은 대전사를 출발점으로 할 때, 크게 세가지 코스로 오를 수 있다.

첫 길은 산보코스이다. 대전사에서 내원마을까지 왕복하는 길이다. 경운기나 오토바이가 다닐 정도로 길이 잘 다듬어져 있다. 그래서 가장 많은 여행객이 이용한다. 아이들에게 큰 무리 없이 산의 매력을 가르쳐주고 싶다면 이 길을 선택하면 된다. 왕복 약 2시간 30분으로 반나절이면 된다.

길은 단순하지만 주왕산의 매력을 골고루 느낄 수 있다. 학이 둥지를 틀었다는 거대한 절벽바위인 학소대, 주왕산 1, 3폭포, 내원마을 등을 볼 수 있다. 하산시에는 약간 길을 틀어 주왕이 숨어 지냈다는 주왕굴, 주왕암 등을 둘러보는 것이 좋다.

두번째 코스는 땀을 좀 흘리는 길이다. 대전사 뒷편에서 주왕산 주봉에 올랐다가 칼등고개-후리매기를 거쳐 제2폭포로 내려온다. 제2폭포에서 내원마을까지는 20분 거리. 내친 김에 내원마을까지 들리면 모두 4시간에서 5시간이 소요된다. 칼등고개에서 후리매기로 내려가는 길은 인공구조물이 모두 망가져 위험구간이 많다. 특히 경사로의 얼음을 조심할 것. 수평 얼음에 익숙한 도시 사람들은 경사 얼음이 얼마나 미끄러운지 짐작하기 어렵다. 눈은 없지만 아이젠을 준비해야 한다.

세번째는 본격적인 주왕산 종주. 대전사에서 후리매기까지는 두번째 코스와 같다. 후리매기에 삼거리가 있는데 오른쪽길이 가메봉에 오르는 길이다. 가메봉은 해발 882m로 주왕산 주봉보다 높다. 다시 한번 등산을 하는 셈이다. 가메봉에서 내원마을로 내려 대전사로 향하면 된다. 7시간 30분∼8시간이 걸리는 장거리 코스여서 먹을 것 등 준비물도 많아진다.

▶가는길

중앙고속도로의 개통으로 많이 가까워졌지만 여전히 만만치 않은 여정이다. 중앙고속도로 서안동IC에서 빠져 계속 34번 국도를 타다가 진보에서 우회전, 31번 국도로 갈아타면 청송군이다. 그러나 안동 시내를 관통해야 하기 때문에 러시아워는 피하는 것이 좋다. 서울에서 출발한다면 약 330㎞로 최소한 5시간은 잡아야 한다. 서울 동서울시외버스터미널에서 주왕산 시외버스터미널(054-873-2907)까지 하루 4차례 시외버스가 출발한다. 주왕산국립공원관리사무소 873-0014.

▶머물곳

숙박시설이 비교적 많지만 화려하지는 않다. 청송읍내에 있는 주왕산온천관광호텔(054-874-7000)이 가장 규모가 크다. 주왕산 입구에 꿈의궁전(874-1611) 주왕산가든여관(874-4992) 주왕산장여관(873-5511) 파크장모텔(874-7080) 등이 있다. 매표소가 있는 상의리 인근 마을은 대부분의 집에서 민박을 친다. 특히 매표소 앞 청운하천을 넘으면 청송군에서 지정한 민박촌이 있다.

▶먹거리

주왕산에서 유명한 약수가 달기약수이다. 달기약수터도 태풍 루사에 많은 피해를 입었지만 상당부분 복구됐다. 철분, 칼슘, 마그네슘 등이 함유된 달기약수는 조혈작용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약수를 이용한 백숙이 청송의 대표 먹거리이다. 종류도 다양하다. 육계백숙, 육계옻백숙, 토종닭옻백숙, 오골계백숙 등이 있다. 2인분 한마리 기준으로 1만 6,000원에서 3만원이다. 달기약수탕 인근에 백숙집이 20여 곳 밀집해 있다. 약수여관식당(054-873-2423), 대구여관식당(873-2176) 등이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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