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권 4년째로 접어드는 블라디미르 푸틴(50·사진) 러시아 대통령이 최우선 현안이라고 여기는 것은 무엇일까.지난해 10월 체첸 반군의 모스크바 문화극장 인질극 진압작전으로 세계의 주목을 받은 이후 최근 몇 개월 간 푸틴의 행보에 평소와 다른 기류가 감지돼 "푸틴의 머릿속에 무엇이 있을까" 가 서방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서방이 의심어린 눈길을 보내는 것은 9·11 테러 이후 반(反)테러 전선에 적극 동참하는 등 서방에 적극적이던 과거와 달리 최근 정책에서는 보수 민족주의 색채가 강하게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인질극 사건이 터졌을 때까지만 해도 푸틴은 테러 문제뿐 아니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동진(東進), 옛 소련의 일원이었던 중앙아시아 지역 미군 주둔 등에서 전향적인 자세를 보여 한때 "돈에 러시아의 자존심을 팔았다"는 비아냥까지 들을 정도였다.
그러나 인질극 진압 과정에서 불거진 방송사와의 갈등 이후 미국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일련의 사건이 연이어 터져 나왔다.
첫번째 사건은 러시아 특수부대의 인질극 진압 당시 민영 NTV가 인질범과 직접 인터뷰하고 수백 명의 목숨을 앗아간 무력진압 과정을 고스란히 생중계하면서 비롯됐다. "그날 TV 화면은 더 큰 비극을 가져올 수 있었다" 며 NTV의 보도행태에 강한 불만을 나타냈던 푸틴은 이 사건을 계기로 NTV의 대주주인 국영 '가스프롬―미디어' 의 보리스 조단 사장을 해임했다.
이어 이란에 핵발전소를 건설해 주는 문제로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과 노골적인 설전을 벌였고 최근에는 유럽 안보협의체인 유럽안보협력기구(OSCE)의 체첸 사태 감시요원을 쫓아냈다. "유럽 협력국들이 불행히도 체첸의 현실을 이해하지 못했다"는 게 정부의 설명이었지만 사실은 시리아와 핵발전소 건설 프로젝트를 추진하기 위한 사전조치라고 서방은 의심하고 있다.
이라크 문제에 대한 이견이나 닭고기 관련 무역 분규 등 미국과 갈등을 빚고 있는 문제도 아직 해결될 조짐이 보이지 않는다.
전문가들은 푸틴의 이러한 행보의 배경에는 12월과 내년 3월로 잡혀 있는 국가두마(하원)와 대통령 선거가 있다고 해석하고 있다. 서방에 유일하게 대항할 수 있는 초강대국의 면모를 보이는 것이 압승할 수 있는 최선의 방안이라고 판단하고 있다는 얘기다.
최근 여론조사에 따르면 푸틴의 지지율은 53%로 결선투표 없이 바로 당선된 2000년 대선 당시와 비슷하다. 러시아 정가에서는 대항세력인 진보 정당들이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데 고무된 푸틴이 더욱 강력한 민족주의 노선으로 회귀함으로써 선거 구도를 조기에 결정짓겠다는 뜻으로 보고 있다.
국가보안위원회(KGB) 요원에서 1999년 말 보리스 옐친 대통령 직무대행을 거쳐 이듬해 대통령에까지 오른 푸틴의 이미지는 서방에는 여전히 '이중인격(dual personality)'이다. 이번 강경 노선이 러시아를 옛 소련으로 돌려놓겠다는 의지로 보기는 힘들지만 보수 민족주의를 대 서방 무기로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사례라는 것이 일반적인 시각이다.
/황유석기자 aquariu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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