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정당개혁이 중요한 화두(話頭)가 되고 있다. 한국정치의 낙후성은 정당체제의 미성숙에서 근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그래서 선거 직후 쇄신 분위기 속에서 정당개혁 문제가 제기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정당개혁의 방향에 대한 합의가 가능할지 걱정이다. 바람직한 방향에 관해 공감대를 찾지 못하고 정파간 갈등만 낳는다면 정당개혁은 또 한번 헛된 구호로 그칠 것이다.개혁 방향성 놓고 시각차
논쟁의 핵심은 원내정당화, 대중정당화 중 어느 쪽이 정당개혁의 바른 방향이냐는 문제로 귀결된다. 지금 한국의 기존 주요 정당들은 원내정당도 대중정당도 아니라는 데 이견이 없다. 제왕적 보스와 그 지휘 하의 당 조직에 의해 운영되다 보니, 의원들의 자율성이 실종되어 원내에서 의원간 대화와 조정이 별 의미를 갖지 못하고 있다. 의원들이 국회 보직보다 당직을 선호하는 기현상 속에서 원내정당화는 요원하다. 또한 극소수 정치인에 의해 예측할 수 없이 창당과 합당이 거듭되는 가운데 정당이 대중적 기반에 뿌리내려 대중정당으로 발전한다는 것도 불가능하다. 이런 현실을 개혁해야 한다는 점에는 이견이 없지만, 원내정당 모델이냐 대중정당 모델이냐 하는 방향성에서 차이가 나고 있다.
원내정당화를 주장하는 이들은 원외 당 조직을 축소하고 정당운영을 국회 내에서 의원들 중심으로 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야 의원들의 자율성이 확보되고 국회가 정책대결의 중심무대로 떠오르면서 국회와 행정부 사이에 견제와 균형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정치자금을 줄여 정경유착을 막을 수 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의원들과 소수 선거 전문가가 주체가 되기 때문에 이념 경직성을 탈피해 융통성 있게 민생 현안을 다루는 데도 좋다고 한다.
반면에 대중정당화 지지자들은 정당이 일반대중에 보다 가까이 다가가 정당일체감을 강화하고 진성당원(당비를 내는 당원)을 많이 확보해 풀뿌리 대중 기반을 구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원내정당화는 자칫 의원들의 과두지배체제를 가져올 수 있고 국민을 통치대상으로 간주해 적극적 참여민주주의에 제동을 걸 수 있다고 이들은 우려한다.
양 주장은 나름대로 일리가 있다. 개혁적 인사들도 통일된 결론을 내지 못하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는 처음엔 원내정당화를 표방했으나, 당선 후에는 유보적 자세를 보이며 오히려 풀뿌리 대중정당화의 필요성에 주목하는 듯하다. 소속당인 민주당이 국회에서 소수당일 뿐 아니라, 그 스스로 민주당 비주류 출신이어서 국회와 의원들에 힘이 쏠리는 원내정당화가 불편할지 모른다. 당 조직이 아닌 시민사회와의 긴밀한 연계를 통해 당선된 그로서는 대중에 직접 호소할 수 있는 대중정당화가 더 매력적으로 보일 것이다.
소수전문가 중심이 현실적
그러나 대중정당의 장점과 노 당선자의 입장을 감안한다 해도 오늘날 시대상황에서는 원내정당화가 우선돼야 한다. 탈산업사회로 이행하며 날로 원자화하고 있는 대중은 특정 정당에 지속적 충성심을 느끼지 않는다. 파편화한 사회이익 사이에서 특정 정당의 지지기반이 될 광범한 공통분모를 찾기도 힘들다. 따라서 대중정당화가 과연 가능할지 의심스럽다. 대중정당은 과거 산업사회의 산물로서 탈산업사회에는 안 어울릴지 모른다. 반면 원내정당은 대중 사이에 지속적이고 광범한 조직을 유지할 필요 없이 의원들과 소수 전문가 중심으로 운영할 수 있어 보다 현실적일 수 있다. 급변하는 환경에 잘 적응해 더 많은 대국민 서비스를 제공해줄 수도 있다.
물론 균형이 중요하다. 정당간 정책합의가 시민들의 호응을 얻고 정치권의 과두지배적 담합을 막을 수 있도록 그 운영에 국민참여를 되도록 많이 유도할 필요가 있다. 그렇지만 현 시점에서 정당개혁의 기본 방향은 원내정당화일 수밖에 없고, 시민사회의 감시능력 제고 등 운영의 묘를 찾는 데 논의를 집중할 때이다.
임 성 호 경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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