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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한인 땀과 꿈의 100년](4) 미주한인 경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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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한인 땀과 꿈의 100년](4) 미주한인 경제사

입력
2003.01.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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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주 한인 경제의 성장은 한인 사회의 발전사와 궤를 함께 한다. 하와이에 닻을 내린 계약 노동자들의 땀과 눈물을 밑거름으로 성장의 기반을 닦은 한인 경제는 제조·금융·서비스업의 줄기를 타고 정보통신(IT)의 열매를 맺었다. 수많은 시행착오에도 좌절하지 않고 사탕수수밭에서 벤처캐피털까지 성공가도를 달려온 한인경제 100년사를 돌아본다.■ 맨손으로 일군 기업의 꿈 (1903∼1965)

1903년 하와이에 첫 이민자들이 도착한 뒤 2년간 7,000여명의 노동자와 가족이 하와이로 이주했다. 이들의 임금은 당시 돈으로 하루 65센트, 월 16달러에 불과했다. 얼마 뒤 이들 중 2,000여명이 본토로 이주, 대부분 캘리포니아에 정착해 식당종업원, 청소부, 가정부, 정원사 등 닥치는 대로 일을 하며 억척스레 돈을 모았다. 1910년 2월9일 리버사이드 카운티 레드랜드의 한인들이 자본금 3,000달러(주당 50센트)로 한인 최초의 주식회사인 '흥업주식회사'를 설립했다. 이후 한미무역(1910년), 허 리 상회(1911년), 한인농상(1914년), 북미상업(1917년) 등 업체들이 속속 생겨났다. 대부분 쌀 재배와 농산물 교역이 주업이었다. 1920년대에는 한인 최초의 백만장자가 탄생했다. 1921년 프레스노 인근에서 청과물 재배 및 유통업을 하던 '김 브라더스'의 김호, 김형순 선생이 그들. 30여년간 매년 100만 달러 이상의 매출을 올린 두 김씨는 오늘날 LA 다운타운 청과상의 효시였다. 당시 회사들은 회사 이윤으로 독립운동 자금을 모으는 데 힘썼다. 비록 실패했지만 흥사단이 세운 북미실업과 대동실업(1917년), 동지회가 세운 동지식산회사(1925년)는 독립운동자금이 설립 목적이었다. 조국 광복과 한국전쟁기를 거치며 한인경제는 한동안 소강상태를 거쳤다. '김 브라더스' 등 몇몇 회사만 명맥을 유지했다.

■ 신 이민 물결과 제조업 붐(1965∼1995년)

1965년 개정 이민법의 의회 통과로 한인 경제는 도약의 기반을 갖추게 됐다. 특히 72년 대한항공의 서울-LA 노선취항으로 한국 자본의 미국 유입도 봇물을 이뤘다. 가발에 이어 봉제·의류업체가 잇따라 설립됐다. 한인상공회의소가 창립되고 한국계 은행이 미국에 닻을 내리기 시작했다. 가발업은 농업과 허드렛일 위주의 한인 경제를 제조업으로 한 차원 끌어올린 지렛대 역할을 했다. 이 용, 조규창씨 등이 당시 가발업계를 선도했던 사람들이다. 72년 연방 상무부가 처음 발표한 미 전국의 한인업체 수는 1,201개, 총 매출은 6,483만 달러, 업체 당 평균 매출은 5만3,986달러였다. 5년 뒤인 77년 전국의 한인업체수는 600%나 증가한 8,504개, 10년 뒤인 87년에는 그보다 700% 이상 늘어난 6만9,304개로 집계됐다. 총매출은 77년 5억5,400만달러(754%), 1987년 70억8,200만달러(1,286%)였다. 80년대에는 의류, 섬유, 봉제업의 호황으로 한인 금융업계도 덩달아 성장했다. 그러나 92년 4·29 폭동은 한인 상권에 큰 상처를 남겼다. 방화 및 약탈 피해를 입은 한인 업소만 총 2,800여개에 달했다. 특히 폭동전 1만5,000개 이상에 달했던 전국의 한인 소유 리커, 마켓은 90년대 중반 1만개까지 줄었고 점차 타 소수민족에게 빈 자리를 넘겨주는 양상을 나타냈다. 폭동의 그림자는 90년대 초반 전국을 휩쓴 불경기와 함께 한인 업계 전반을 짓눌렀다.

■ 벤처신화와 성공시대(1995∼2003년)

90년대 중반 불경기를 벗어나면서 20여년간 자본과 기술력을 축적해온 한인 경제는 2세 고급 인력의 등장과 함께 21세기 새로운 도약의 준비를 갖췄다.

변호사, 공인회계사, 컴퓨터 엔지니어, 증권브로커, 경영컨설턴트 등 전문인들의 숫자가 해마다 늘어났고 벤처기업과 하이텍 IT 업체들도 속속 등장했다. 주류사회에 뿌리를 내리고 주식시장에서 '대박'을 터뜨린 대기업가들도 탄생했다. '자일랜'의 창업자 스티브 김씨, 암벡스 그룹 창업자 이종문씨, 듀라코트 대표 홍명기씨, 패코철강 대표 백영중씨 등이 대표적인 경우다.

미주 한인 경제는 30여년간의 고속 성장을 바탕으로 580만 해외동포 경제를 선도하는 중심축이 됐다. 모국 경제에 대한 기여도도 높아져 과거의 일방적 '의존 관계'에서 벗어나 대등한 '동반자 관계'로 성장했다. 사탕수수밭에서 월스트리트까지 땀과 눈물을 쏟아 일궈낸 한인사회의 경제력은 이민 100주년을 맞는 시점에 그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로스앤젤레스=특별취재반

■한인타운 90년대 급팽창

해외 동포사회의 중심인 로스앤젤레스 한인 타운은 1990년대를 거치면서 눈부신 발전을 거듭했다.

올림픽 블러버드 인근에 집중해 있던 한인업소들이 90년대 초반 버몬트와 웨스턴 애비뉴를 따라 윌셔 블러버드와 6가 지역으로 북상하면서 한인 타운 상권은 크게 확대됐다. 특히 윌셔 블러버드의 사무용 건물들은 한인 사회의 화이트칼라들이 완전 장악했다. 내과의사인 데이빗 이씨를 중심으로 한 부동산투자 그룹은 윌셔 블러버드의 사무용 건물만 30여개를 매입, LA부동산 업계의 큰손으로 부상했다.

한인 경제 규모가 급팽창함에 따라 금융업계도 발전을 거듭했다. 한국외환은행이 1974년 LA에 터를 잡은 이후 80년 윌셔은행, 82년 한미은행에 이어 86년 중앙은행, 88년 미주은행(나라은행 전신), 91년에는 새한은행이 문을 열었다. 또 95년에 가주조흥은행, 2001년에 유니티은행, 그리고 2002년에 미래은행이 창립되면서 LA에만 한인 은행이 9개로 불어났다. 1980년대초 2억 달러에도 미치지 못하던 한인 은행의 예금고는 2002년 말 42억 달러로 20배 이상 늘어났다.

■신화의 기둥 "스타 기업가"

미주 한인 경제의 규모가 커지자 주류사회에 뿌리를 내리며 크게 성공한 '스타 기업가'들이 탄생했다.

'자일랜' 창업자 스티브 김씨는 '스타 기업가' 탄생의 신호탄이었다. 김씨는 1993년 설립한 자일랜을 2년 만에 1,000여명의 직원과 전 세계 70개국에 지사를 둔 대기업으로 성장시킨 신화적인 인물. 자일랜은 나스닥 상장과 함께 96년 타임지 선정 100대 초고속 성장 기업 중 1위를 차지했다. 북가주에서는 '암벡스그룹' 대표 이종문씨가 벤처신화를 이뤄냈다. 89년 개발한 그래픽 카드를 히트시킨 뒤 96년 인터넷, 네트워킹, 멀디미디어 테크놀로지를 취급하는 암벡스를 설립한 이 회장은 자선사업가, 스탠포드대 아태연구소 교수로도 사회적 신망을 얻고 있다.

'듀라코트' 대표 홍명기씨와 '패코철강' 대표 백영중씨는 LA와 중서부를 누비며 미 주류사회 경제성장에 큰 역할을 하고 있는 기업가들이다. 홍씨는 리버사이드에서 특수코팅 페인트 제조업체를 경영하고 있으며 1,000여만달러를 투자, 앨러배마주 헌츠빌에 생산공장을 건설했다. 홍씨는 또 미래 한인사회 지도자 육성과 장학사업을 위해 1,000만달러 규모의 비영리재단 '밝은 미래 재단'을 설립했다. 백씨는 'H빔'으로 불리는 새로운 경 철강자재를 개발, 이 부문 미국 내 선두주자로 입지를 다지고 있다.

불경기에도 최대 규모의 한인의류업체 '포에버 21'을 키워낸 장도원씨도 성공시대를 선도한 인물. 84년 LA 다운타운에서 1만1,000달러를 자본금으로 의류사업에 뛰어든 그는 현재 전국 25개주에 120개 매장을 갖추고 연간 3억 달러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봉제 업계에서는 '구스매뉴팩처링'(대표 구우율)이 2001년 LA카운티의 소수계 기업 중에서 매출기준 7위(1억2,280만달러)를 기록했다. 구스의 브랜드 AG는 스포츠웨어 인터내셔널사에서 주는 2002∼2003년 여성 청바지 부문 최고상을 수상했다. 강종욱·종호 형제가 설립한 신소재개발업체 '리퀴드메탈 테크놀로지스'(LMT)는 2002년 뉴욕 나스닥에 상장되면서 주목을 끌었다. 리퀴드 메탈은 강도가 티타늄의 3배에 이르고 부식이 전혀 안 되는 반면 공정과정이 플라스틱과 유사해 생산비를 절감할 수 있는 차세대 소재로 각광받고 있다.

/로스앤젤레스=특별취재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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