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주부들은 어릴 적의 설렘은커녕 설 차례상 준비와 손님맞이 생각때문에 벌써부터 머리가 아프다. 나들이를 겸해 시골 장터를 찾아보자.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과 훈훈한 인심이 그 곳에 있다. 명절을 앞두고 좌판에는 온갖 산물이 넘친다. 여행 삼아 돌아보면서 제수도 준비할 수 있는 5일장을 찾아본다.성남 모란장 경기 성남시/끝자리 4, 9일
전국에서 가장 규모가 큰 5일장이다. 경기 성남시 중원구 성남동 대원천 하류, 길이 약 400m, 폭 30m의 복개지 위에 장이 선다. 모란장은 1960년대 초반, 모란예식장 주변을 중심으로 형성되기 시작했다. 대령으로 예편한 김창숙 전 광주군수가 가난한 예비역 군인들과 함께 하천부지를 개간하면서 생필품을 교환하기 위해 장을 연 것이 시초.
평양이 고향인 김창숙씨가 평양의 모란봉을 그리워하면서 이 지역의 이름을 모란이라고 지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현재 모란장에서는 상인회에 등록된 '정식상인'을 비롯해 정해진 자리가 없는 노점상, 자신이 직접 재배한 물건을 갖고 나오는 농민 등 2,000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물건을 파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때문에 없는 것이 없다. 그냥 둘러보는 것 만으로도 눈과 배가 부르다. 크게 13개 구역으로 장이 이루어져 있다. 화훼, 곡류, 약초, 의류, 신발, 잡화, 생선, 야채 등이다. 장터에서 팔 수 있는 모든 물건이 구비된 셈이다. 서울에서 가깝기 때문에 장날이면 자동차가 고생한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이 좋다. 3번 국도를 타고 성남시내에 들어서서 종합버스터미널을 지나자마자 우측으로 있다. 서울에서는 서울외곽순환도로를 타면 된다. 지하철 모란역에서 내리면 바로 모란시장이다.
북평장 강원 동해시/끝자리 3, 8일
강원 동해시 북평동은 예부터 영동지방 교통의 요지였다. 동해안을 훑는 7번 국도가 남북으로 지나가고 태백시에서 38번 국도가, 정선에서 42번 국도가 닿는 곳이 북평이다. 영동선 열차도 북평을 지난다. 그래서 큰 장이 섰고 지금도 그 명성을 유지하고 있다. 영동 지역을 대표하는 장이다.
동해 바다에서 자란 온갖 수산물과 백두대간 골짜기의 산물이 모두 모인다. 한마디로 산해진미가 모두 그 곳에 있다. 설 상차림을 준비하는 데에는 북평장만한 곳이 없다. 가장 완벽하게 갖춰져 있는 것은 역시 해산물이다. 특히 건조시킨 어물은 북평장의 자랑이다. 장터의 상인들은 모두 생선을 다루는 데 일가견이 있다. 언제나 어물과 친숙하게 지낸 탓이다. 그래서 북평장의 어물은 정갈하고 간이 정확하기로 유명하다. 대구, 명태, 민어, 오징어, 가오리 등이 바로 요리할 수 있는 상태로 장에 나온다.
요즘 장터의 어물전을 알록달록 꾸미고 있는 것은 게. 동해안의 겨울 진객인 대게와 털게이다. 대게는 지금 살이 한창 올라있다. 작은 것을 들어도 묵직하다. 대게를 닮은 홍게도 있다. 대게의 배는 흰색에 가깝지만 홍개는 배의 색도 붉다.
금강산행 배가 출발했던 동해항에서 전천을 가로지르는 다리를 건너면 바로 장터이다.
정선장 강원 정선군/끝자리 2, 7일
관광열차 운행 등으로 도시 사람들에게 꽤 알려진 5일장이지만 역사는 그리 길지 않다. 1966년 2월 17일에 처음 장이 열렸다고 한다. 산골에서 채집한 각종 산나물과 생필품을 사고파는 자그마한 장이었다. 지금도 규모는 모란장이나 북평장에 비해 작지만 내용이 알차졌다. 특히 과거의 향수에 젖을 수 있다. 어릴 적 신던 검정 고무신부터, 지게, 빨간 내복 등 추억을 자극하는 물건들이 많다.
정선장의 주된 품목은 산비탈에서 나온 각종 약재와 산나물. 가끔 산삼도 구경할 수 있다. 인근에 약재시장이 따로 있지만 정선장이 서는 날이면 오히려 빛을 잃는다. 직접 캔 약초를 좌판에 늘어놓고 멋쟁이 도시 아가씨와 흥정을 하는 심마니 할아버지의 모습이 정겹다.
모든 산나물이 있다. 겨울이어서 햇나물은 없지만 잘 말려서 보관해 놓은 각종 나물이 좌판에 넘친다. 봄이 되어 햇나물이 산에서 쏟아져 내려오면 장 전체에 나물 향기가 가득하다.
장터 옆에 위치한 정선농협 판매장에 들르면 더덕, 쥐눈이콩간장 등 이 지역의 특산물을 살 수 있다. 특히 축협판매장에서는 정선의 비탈에서 방목한 한우고기를 진공포장해 판매한다. 24시간 신선도를 유지한다고 한다.
정선장의 또 다른 매력은 먹거리. 강원도 옥수수와 메밀을 이용한 음식이 대종을 이룬다. 옥수수가루로 반죽한 올챙이국수, 메밀 콧등치기 국수, 메밀전, 메밀묵 등이다. 번듯한 음식점을 찾는 것도 좋지만 역시 장터의 좌판이 분위기를 낸다. 목욕탕의자에 쪼그리고 앉아 그릇을 비우다 보면 구수한 강원도의 풍미에 절로 '막걸리 한 잔' 소리가 나온다.
장이 열리는 날에는 외지인들을 위해 도우미가 배치된다. 특산물 또는 먹거리 등 안내가 필요하면 도우미에게 도움을 요청하면 된다. 정선읍내 한 가운데에 있어 찾기가 쉽다. 장이 서는 전날에는 정선에서 숙박을 하기 어렵다. 워낙 숙박시설도 부족하지만 장꾼들이 미리 예약을 해놓기 때문이다.
/권오현기자 k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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