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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비언어 신체극단 데레보 "신곡"/지옥을 춤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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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비언어 신체극단 데레보 "신곡"/지옥을 춤춘다

입력
2003.01.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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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공포' '믿음' 등의 느낌을 말로 온전히 전달할 수 있을까? 수험생 자녀를 위해 애를 태우며 기도하는 어머니의 모습에는 말보다 강한 메시지가 담겨 있다. 하나의 몸짓이 수천 마디의 언어보다 더욱 또렷한 의미를 전할 수 있다.2월 6∼9일 LG아트센터 무대에 오르는 러시아 극단 데레보의 '신곡'은 몸짓의 표현력을 최대한으로 끌어 올린 신체극이다. '신곡'에 나오는 배우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그러나 무대는 아름답게 때로는 그로테스크하게 관객에게 다가온다.

'단테의 신곡'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이지만 그 안의 언어는 사라지고 이미지만 남아 있다. 등장인물이라는 개념도 없다. 원작에서 인도자 베르길리우스의 존재가 어디로 갔는지, 사티로스의 악마적 이미지가 무슨 의미를 갖는지 알 수 없다. 4명의 배우는 몸을 이용해 날고, 춤추고, 몸을 비틀며 천국과 지옥, 삶과 죽음 속에 담긴 추상적 개념들을 나름대로 표현할 뿐이다.

'신곡'은 2000년과 지난해 데레보가 서울에서 공연한 전작 'Once…'의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와는 대조적이다. 세상이 마냥 아름다울 수는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는지, 지옥과 연옥, 천국이 뒤섞인다. 천사와 악마가 공존하고 죽음과 탄생이 순환한다. 관객의 눈 앞에는 몽환적 '사후세계'가 펼쳐진다. 연출가인 안톤 아다진스키는 "이번에는 아름다운 '지옥' 이야기를 만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피와 살점이 튀는 처절한 전쟁터의 모습을 첨단 음향과 함께 영화로 재현하더라도 관객은 팝콘을 씹으며 스크린 안쪽의 세계를 감상할 뿐이다. 그러나 '신곡'의 관객은 그럴 틈이 없다. 무대와 객석의 경계는 허물어져 중앙무대에 390여 석의 객석이 마련된다. 배우는 관객 사이사이, 때로는 뒤편에서 연기를 펼치기도 한다. 원형의 회전 무대는 경계가 없는 순환의 상징이다.

이 신체극은 이해하기 까다로운 '아방가르드'이지만 해석에 연연할 필요는 없다. 여러 상징과 은유가 난무하지만 관객은 흐름을 느끼면서 각자 자신이 필요로 하는 의미를 찾으면 그만이다. 연출자도 관객에게 무엇을 보여주거나 이야기하려 하지 않았다. '시'의 느낌과 이미지를 구구절절 산문으로 옮길 필요는 없다는 생각에서였다. 이 작품의 본래 제목은 '자살'이었지만 이탈리아에서 연습을 시작할 때 떠오른 영감으로 되돌아가고자 하는 뜻에서 '신곡'으로 바꿨다. 그러니 굳이 단테의 '신곡'에 맞추어 보려고 애쓸 필요도 없을 듯하다. (02)2005―0114

/홍석우기자 museh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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