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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에서 띄우는 편지

입력
2003.01.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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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앞에 개천이 흘렀습니다. 높은 둑이 물길을 따라 나있었습니다. 아이들은 그 둑길을 따라 걸어 내려갔습니다. 30분 정도 걸으면 제법 큰 강이 나타났습니다. 물이 아주 맑고 깊지 않았죠. 아이들의 천국이었습니다.속옷만 입구 물 속에서 놀았습니다. 돌을 들면 민물새우가 지천이었습니다. 옷핀을 구부려 낚시바늘을 만들고 파리를 꿰어 물에 흘리면 거의 꽁치만한 피라미가 물려 올라오곤 했습니다. 손질도 제대로 하지 않고 집에서 퍼간 고추장에 대충 지집니다. 둘이 먹다가 하나가 죽어도 모를 정도였죠. 목이 마르면 강물에 코를 박고 그냥 꿀떡꿀떡 삼켰습니다.

꼭 30년전, 경기 성남시의 풍경입니다. 마을이 있던 곳은 지금의 모란장 옆이고, 맑은 물이 흘렀던 강물은 한때 최악의 오염하천으로 꼽혔던 탄천입니다. 믿거나 말거나입니다.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달라졌지만 30년전 성남의 삶은 고단했습니다. 개천가의 집들은 판잣집수준이었습니다. 서울에서 내몰린 어려운 사람들이 살았습니다. 주거지만 옮겼을 뿐 생활의 터전은 서울인 사람이 많았습니다. 서울과 연결되는 버스 노선은 딱 1개, 아침저녁이면 전쟁이 따로 없습니다. 버스가 터지는 것을 보지는 못했지만 버스 유리창이 터져나가는 것은 여러번 봤습니다. 돌아오는 버스는 더욱 진풍경입니다. 지친 사람들은 서서 잠을 청합니다. 그러나 절대 넘어지지 않습니다. 버스 속은 넘어질 틈조차 없습니다.

요즘도 모란장에 가끔 갑니다. 물건을 사기보다는 추억에 젖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늘로 치솟은 인근의 아파트단지. 휘황한 네온불빛, 줄을 잇는 자동차 행렬... 참 많이 변했습니다, 상전벽해란 말이 실감납니다.

생각에 잠깁니다. 어려웠지만 맑고 아름다웠던 옛날과 풍요롭지만 탁하고 소란스러운 지금을 종종 비교합니다. 과거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잘 알아서일까요?

권오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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