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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된 삶에도 황홀한 순간이…"/성석제 소설집 "번쩍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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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된 삶에도 황홀한 순간이…"/성석제 소설집 "번쩍하는…"

입력
2003.01.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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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안다. 모든 순간이 번쩍거릴 수는 없다는 것을. 알겠다. 인생의 황홀한 어느 한 순간은 인생을 여는 열쇠구멍 같은 것이지만 인생 그 자체는 아님을."성석제(43·사진)씨가 소설집 '번쩍하는 황홀한 순간'(문학동네 발행)을 펴냈다. 원고지 10장 안팎의 짧은 소설 22편이 묶였다. 그는 이 형식이 꽤 마음에 드는 눈치다. "재미있어요. 계속 쓸 거예요." 그러고 보니 성씨는 이런 글쓰기로 시인에서 소설가로 전업했다. 1994년 '그곳에는 어처구니가 산다'를 출간하면서 소설가로 이름을 알렸으며, 97년 같은 형식의 글모음 '재미나는 인생'을 펴냈다. 그러니 세번째 짧은소설집으로 부르는 것도 괜찮겠다.

그는 말하자면 농담처럼 소설을 쓰는 쪽이다. "성석제의 경우 농담이란 억압적인 권위와 권력에 대한 조롱"(평론가 이광호)이라는 평을 굳이 들지 않더라도, 그의 이야기는 냉소적이었다. 그런 그의 이번 작품집은 묘하게도 따뜻하다. 좋았던 옛날을 돌아보기도 하고, 독자를 웃기기 전에 자신이 먼저 웃어버리기도 한다. 세월이 흘렀나 보다. 군대에서 취사반장의 연애 편지를 대신 써주고 얻어먹었던 '신부처럼 순결한 라면'은 허풍이 좀 섞이긴 했지만 "그 라면 때문에라도 다시 군대에 가고 싶을 정도로" 감동적이었다. 온천이 많다는 세비리(世沸里)의 목욕탕 이발사 이야기를 쓰면서는 "싸장님같이 붕 뜨고 쫙 뻗치는 머리는 말임다 깨끗하게 확 쳐가이고 체리를 발라서 싸악 넘기야 폼이 확 사는 기라"고 한다. 체리가 '젤'이라는 걸 뒤늦게 깨닫곤 웃고 말았다.

독자는 그의 이야기를 진짜인 것처럼 귀기울여 듣는다. 그러나 안다. 그것은 '번쩍 하는 황홀한 순간'이라는 것을. 소설은 가짜를 진짜처럼 들려주는 이야기라는 것을. 그 속에 작가가 던져놓는 것은 사람과 세상을 읽는 독법이다. 그래서 "새삼스럽게 소설은 직격이 아니라 비유라는 생각을 했다"는 작가의 말은 확실히 성석제답다.

/김지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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