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0년 동안 미국은 다량의 핵무기를 가진 소련과 중국에 "핵을 사용하면 대량보복을 당할 것"이라고 겁을 주어 얌전히 있도록 할 수 있었다. 그런 마당에 이라크나 북한 정도가 무슨 위협이 될 있겠는가.> 북한 핵 문제를 공부해 보려고 통일문제연구소 서가에서 찾아낸 '북한과 핵 폭탄'(North Korea and the Bomb)은 이런 질문으로 서두를 풀어가고 있다.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센터(CSIS) 국제 안보전략 프로젝트 담당자 마이클 J 마자르는 이런 의문을 소개하면서, 북핵 문제의 연원(淵源)에서 시작해 세계의 이목을 끌어온 북한 핵 문제 전모를 파헤치고 있다. 지난>
한국전쟁이 교착상태로 빠져든 1953년 초 중국과 북한은 미군이 철수할 날을 기다리면서 판문점 휴전협상에 시큰둥한 태도를 보인다. 실망한 아이젠하워 미국 대통령은 그 해 5월 국가안전보장회의에서 "한국전을 끝내려면 핵을 사용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말한다. 이에 겁을 먹은 중국과 북한은 휴전협상을 서두르게 된다. 이것이 북한이 핵무기를 갖고 싶어 하게 된 첫번째 동기라고 마자르는 분석하고 있다.
1958년 미국은 북한측의 정전협정 위반을 경고하기 위해 280㎚ 핵 장착 포탄과 핵 탄두 장착 로켓을 한국에 반입했다. 이듬해엔 사정거리 1,100㎞ 순항 미사일을 배치했고, 61년에는 1,800㎞ 메이스 미사일을 들여왔다. 60년대 후반에는 핵 지뢰까지 갖추어 완전 핵무장을 마쳤다.
이른바 닉슨 독트린이라는 정책의 이름으로 미국이 주한미군 병력감축을 입에 올리기 시작한 70년대 한국도 자체방위 강화를 위해 핵 개발을 서두르게 된다. 이런 외부 요인들이 북한의 핵개발과 무관할 수는 없을 것이다. 독일통일 직후 공개된 동독 외교문서에는 북한이 얼마나 남한 쪽의 핵무기를 두려워했는지 잘 드러나 있다. 동독 지도자 호네커를 만난 자리에서 김일성은 "남한에서 팀 스피리트 훈련이 시작되면 응전태세를 갖추느라고 국가기능이 완전마비 상태에 빠지곤 한다"고 털어놓았을 정도다.
북한 핵 프로그램은 64년 소련으로부터 입수한 소형 원자로를 영변에 시설한 것에서 출발했다. 70년대 확충기를 거쳐 80년대에 접어들자 영변의 시설들은 미국 위성에 사진으로 포착될 만큼 본격화·대형화하였다. 핵 폭탄 제조를 시도 중이라는 망명자의 증언이 나오기도 했다. 발전용 원자로라고 주장했지만, 송전시설과 연결돼 있지 않은 사실이 핵 개발 의혹을 뒷받침했다.
90년대 전반기는 북한 핵 문제로 온 세상이 시끄러웠다. 단일 이슈로 그렇게 오래 인구에 회자된 사건이 또 있었을까. 5년을 끈 협상이 타결되어 한숨을 돌리는가 했더니, 똑같은 문제가 다시 터졌다.
북한은 억울할 것이다. 내로라 하는 강대국들은 말할 것도 없고, 이스라엘 파키스탄 같은 나라들도 핵을 가졌는데, 왜 우리만 가지고 문제를 삼느냐는 항변은 충분히 일리가 있다. '나는 가져도 되지만 너는 안 된다'는 식의 강대국 어거지 논리가 횡포라고 생각되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북한은 바로 자신의 생존과 안전을 위해 핵 개발을 포기해야 한다. 도올 김용옥 기자가 김정일 위원장에게 보낸 공개 서간문에서도 지적했듯이, 북한이 핵을 가지면 일본은 그 다음날로 핵무장을 하게 된다. 그렇다면 한국은 가만 앉아서 구경만 할 것 같은가. 비핵지대가 된 한국과 일본이 핵을 갖게 되면 북한이 원하는 '핵의 정치학'은 아무 의미가 없어진다.
무엇보다 파탄 난 경제를 되살리기 위해, 백성을 더이상 굶기지 않기 위해서라도 북한은 핵을 버려야 한다. 경제개선 사업과 신의주· 개성 특구 사업도 핵 문제를 안고서는 될 일이 없다. 믿을 수 없는 나라에 누가 투자를 하겠는가. 90년대처럼 협상을 오래 끌다가는 한 치 앞을 기약할 수 없게 된다는 것을 왜 모르는지, 정말 답답한 일이다.
문 창 재 논설위원실장 cjmo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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