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실시된 삼성, 현대 등 주요 그룹의 사장단 및 임원 인사에서 '로열 패밀리'의 움직임이 극명하게 엇갈려 관심을 모으고 있다. 새 정부가 기업지배구조 개선 등에 목소리를 높였던 터라 오너 일가의 거취는 주목을 받았던 것이 사실. 하지만 정작 뚜껑을 열자 기업들은 대조적인 행보를 보였다. 현대, LG가 오너 3세를 경영 전면에 내세운 반면, 삼성 SK 등은 오히려 한발 물러서는 자세를 취했다.■엇갈리는 행보
삼성 이건희 회장의 외아들 재용씨는 이번 인사에서 삼성전자 상무보에서 상무로 고작 한 단계만 올라갔다. SK도 지난해 말 인사가 있었지만, 그룹 회장 취임여부로 관심을 모았던 최태원 회장이 제 자리에 머문 것은 물론, 최신원 SKC 회장, 최재원 SK텔레콤 부사장, 최창원 SK글로벌 부사장 등 오너 일가의 직책과 직위는 달라지지 않았다.
하지만 현대와 LG의 움직임은 정반대. 3일 현대자동차 인사에서 정몽구 회장의 아들인 의선씨가 전무에서 부사장으로 승진했고, 조카 정일선 비앤지스틸 전무, 둘째 사위 정태영 기아차 전무, 셋째 사위 신성재 현대하이스코 전무 등도 모두 한 단계씩 직급이 올라갔다. LG도 최근 인사에서 구태회 창업고문의 장남 구자홍 LG전자 부회장을 회장으로 승진시켰고, 허씨 가문의 수장 격인 허창수 회장이 이끄는 건설의 허명수 상무를 부사장으로 승진시켜 오너일가 경영체제 를 강화했다.
■속내는 제각각
인사 내용만 뜯어보면 현대, LG가 3세 경영 시대의 도래를 선언한 반면 삼성, SK는 후계구도가 수면 아래로 잠복한 양상. 특히 재계의 관심을 모았던 '포스트 이건희'를 대비한 삼성의 '후계 체제' 구축은 미뤄질 것으로 보인다.
삼성의 한 고위 관계자는 "그룹 규모 자체가 워낙 크고 배워야 할 것이 많아 경영수업에 주력하겠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반면 현대의 한 관계자는 "사업 부문별 승계작업이 자연스럽게 이뤄지는 것으로 보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재계 일각에서는 로열 패밀리의 엇갈리는 행보에 대해 재벌개혁이 화두로 떠오르는 등 대선이후 급변하고 있는 정치·경제적 환경과 각 개별기업의 상황이 맞물려 발생한 불가피한 선택으로 보고 있다.
즉 후계구도가 단순하거나 이미 승계작업이 이뤄진 기업에서는 따가운 시선을 고려해 조심스러운 행보를 보이는 반면 후계자 승계작업이 시급한 기업에서는 여론의 질타를 감수하고서라도 새 정부 출범 전에 서둘러 후계 구도를 본격화했다는 해석이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오너 일가가 경영에 참여하는 것은 책임경영을 구현한다는 점에서 중요하지만, 아무래도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는 시기여서 인사를 두고 고심에 고심을 거듭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천호기자 tot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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