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원―선, 2차원―면, 3차원―입방체(Cube), 그리고 4차원―초입방체 (Hyper Cube). 영화 제목은 짧게 '큐브', 입방체라 했지만 영화의 공간적 배경은 4차원 초입방체를 표방하고 있다.영화에서 주인공들이 갇혀있는 방은 점이 모여서 선이 되고, 선이 모여서 면이 되듯 입방체가 모여서 된 초입방체의 거대 미로를 이루고 있다.
방과 방 사이에 난 조그만 문은 일상적 의미로 삼차원 공간의 옆방을 연결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삼차원을 사차원으로 확장하기 위해 필요한 새로운 좌표축 역할을 하기도 한다.
영화 속 등장인물을 통해 잠시 언급되는 '평행우주설'은 물리학에서 양자역학을 해석하는 가설 중의 하나인데, 골자는 우리가 살고 있는 우주 옆에는 수없이 많은 '쌍둥이' 우주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영화에서는 조그만 문들이 네번째 공간좌표축상의 '옆방'을 연결하기도 해 주인공들은 바로 옆방에서 조금 전에 죽은 사람― 실은 자신의 쌍둥이― 을 다시 만날 수 있다.
이 영화를 물리학적으로 따지면서 보는 것은 좋은 감상법이 아닌 듯하다. 영화 속에서 상정한 시간과 공간구조를 살펴 보자. 우선 영화에서 여주인공이 미래 혹은 과거의 자신의 모습을 어느 한 방에서 보는 장면이 있는데 이는 시간과 공간이 합쳐져 시공간을 이룬다는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으로 설명을 시도해야 할, 인과율과 저촉될 수 있는 심각한 현상이다.
한편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 쌍둥이들이 차고 있던 시계가 주인을 잃은 채 어느 한 방으로 모아지는데 이때 모든 시계는 정확히 같은 시각을 가리키며 움직이고 있다. 이는 줄거리 전개상 불가피한 설정이겠지만 물리학적으로 본다면 공간상으로는 사차원 초입방체를 설정하고서도 시간상으로는 절대 시간축을 가정한 비상대론적 설정을 하는 모순을 빚는다. 이쯤 되면 물리학적 고찰은 그만 접고 영화를 여러 물리학 개념으로 치장한 하나의 판타지로 바라보는 게 좋을 듯 싶다. 의자에 몸을 깊숙이 파묻은 채 말이다.
감독 역시 영화 마지막에 가서는 상대적으로 이해하기 쉬운(?) 첩보 영화식 반전을 장치함으로써 관객들이 영화를 따라 가며 느꼈을 시공간 개념의 혼란에서 벗어나 영화의 중요 줄거리를 이해했다는 만족감을 느낄 수 있도록 유도하고 있다.
개인적 사족 하나. 표면적일지라도 영화를 통해 이론 물리학의 여러 흥미로운 개념을 소개한 것은 반가운 일이지만 영화 속에서 노벨 물리학상 후보가 누워 있다가 외마디 괴성을 한 번 지르는 시체로 나오는 점, 천재 수학자의 모습을 치매에 걸린 노파로 그린 점 등은 아쉽다. 옛날 TV 시리즈물 '맥가이버'처럼 물리학자 또는 응용공학 전공자가 멋있는 주인공으로 나오는 영화가 만들어져 감상할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해 본다.
마지막으로 영화 속에서 암호처럼 등장하는 숫자, 60659에 대한 힌트를 다음과 같은 덧셈식으로 적어 본다. 60,659(폭발 시각)+175,301(방의 수)=0
고등과학원 박정혁박사 (초끈이론연구)
● "큐브 2"는 어떤 영화
데이비드 크로넨버그가 '캐나다 영화의 미래'라고 칭송한 신예 빈센조 나탈리의 '큐브'(1999)는 저예산 영화의 모범 답안과도 같은 영화였다. 밀폐 공간과 숫자만으로도 호러를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은 비평가와 관객을 열광시켰다.
'큐브 2'(Hyper Cube)는 전편과 마찬가지로 정육면체 안에 갇힌 사람들의 탈출기. 정신과 의사 케이트(캐리 매켓), 사립탐정 사이몬(게리 데이비스), 게임 프로그래머 맥스 (매튜 퍼거슨) 등 공통점이라고는 없는 8명이 마치 생명체처럼 사람들을 위협하는 방을 옮겨 다니며 탈출구를 찾는다.
그러나 치매증상을 보이는 할머니 페일리 부인(바바라 고든), "무서운 게 다가오고 있다"며 겁에 질린 맹인 샤샤(그레이스 린 쿵)의 공포는 공격적 성향의 사이몬을 더욱 화나게 하고, 사람들은 초입방체와 사람으로부터 동시에 공격을 받게 된다. 힌트는 오직 60659.
전편이 수학적 논리 싸움에 착안했다면 2편은 물리학을 토대로 한 두뇌 게임을 시도했다. 하지만 논리를 정치하게 진행시키지 못하는 대신 현란한 카메라 움직임과 액션 영화의 추적극을 방불케 하는 갈등에 무게가 쏠리면서 지적 호러의 맛은 반감한다.
영화 전반부는 더 화려해졌으나 여운은 적다. '저수지의 개들' '아메리칸 사이코'의 촬영감독 안드레이 세큘라의 데뷔작. 24일 개봉. 15세 관람가.
/박은주기자 jup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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