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우는 오른쪽 눈썹 위에 반창고를 붙이고 나타났다. 술 취한 지난달 말 어느 새벽, 집 근처 일산 호수공원에서 인라인스케이트를 타다 입은 상처라고 했다. 복숭아색 반창고로 숨기고 있어 눈에 잘 띄지는 않지만 조만간 성형수술까지 받아야 할 만큼 상처는 깊다. "꽉 찬 서른 다섯이라는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행동 아니냐"는 말에 "어른이 되기 싫어요"라고 받아 넘긴다. 하지만 8집까지 내는 동안 그를 스쳐간 시간은 숨길 수가 없다. "이제 제 노래에도 나이든 냄새가 나는 것 같지 않아요?"8집 'Da Painkiller'에는 오랜 방황 끝에 찾아낸 자신의 색깔이 담겨있다. 그가 정의 내린 자신의 음악 색깔은 '회색'. "좀 더 멋있게 말하면 그림자 같은 음악, 서늘하고 축축한 도시의 어두운 면을 어루만질 수 있는 음악이죠." 이번 앨범에서 그가 가장 공들인 곡은 'Stay'와 '중독'. 두번째와 세번째로 실려 있는 곡이다. " 'Stay'는 가장 먼저, '중독'은 가장 나중에 작업한 곡이기 때문에 음악적 색깔과 개인적인 심정은 차이가 있다"고 말한다. 'Stay'가 절제되고 편안한 느낌의 전형적인 이현우식 발라드라면, '중독'은 특유의 반항아적 몸짓을 반영하는 듯 거칠고 세련된 느낌이다. "팬들에게 그 차이를 느끼게 해 주고 싶어서 일부러 앞뒤 곡으로 붙여 놓았다"고 한다.
'Stay'는 이현우 윤종신 윤상과 함께 노총각 4인방의 멤버였던 김현철의 결혼식에 갔다가 영감을 얻어 만든 곡. "이제 정말 결혼을 하고 싶어서인지 사전답사라 생각하고 식장을 열심히 둘러보고 있었죠. 음식은 어떤가, 식장은 어떻게 장식하면 예쁜가… 그때 갑자기 캐럴키드의 'When I Dream'이 울려 퍼지는데 딱 감이 오더라구요" 'Far Away'에서도 그 특유의 부드럽고 애절한 목소리가 잘 살아 있다. 장르로 보면 이번 앨범은 그의 표현처럼 '비빔밥'이다. 'DANGER' 'MASK' '사랑은 죽었다' 등 대부분의 수록곡에 힙합, 재즈, 록 등 다양한 장르가 '이현우식'으로 변주되어 있다.
그의 주된 팬층은 30대 전후의 직장여성. 그들 대부분이 유부녀가 돼 가듯 그는 역시 이제 인생의 전환기를 맞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고민을 반영하듯 지난 한 해 그는 음악 이외의 일을 많이 벌였다. 여중생 추모촛불시위에 참여했고, 대선 때에는 이회창 후보 지지를 당당하게 밝히기도 했다. 5월에는 '팻독'(Fat Dog)이라는 브랜드로 동대문시장에 자신의 매장을 차렸고, 여름에는 미술공부를 위해 미국에 머물렀다. 브라이언 맥나이트와의 조인트 콘서트도 있었다. 느낀 점도 많다. 사업이란 쉽지 않은 것을 알았고, 대선 기간에는 온갖 협박 편지와 휴대폰 문자 메시지에 시달리면서 고민에 빠지기도 했다.
그가 닮고 싶은 모델은 그룹 '유투'의 보노나 올리비아 뉴튼 존. "빈국부채탕감운동 등 활발한 사회활동을 펼치는 보노나 환경운동으로 여생을 보내고 있는 올리비아 뉴튼 존을 보면서 자신에 대해 많이 생각했다" 며 "도와 줄 사람도 많고 할 수 있는 일도 많다"고 했다. 실제로 그는 환경문제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어 조만간 지리산 반달곰 보호운동도 시작할 계획이다. "한 때 음악을 안 하면 무엇을 할 지 무척이나 고민했어요. 나이 들어 팬들에게 추한 모습 안 보이는 게 소원이거든요."
그 고민도 어느 정도 정리됐다. "혹 한계가 와서 음악을 안 하게 되어도 상심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고백한다. "음악을 하지 않아도 제가 할 수 있는 일들은 무한하다는 사실에 행복해요. 하지만 음악을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 해야죠."
/최지향기자 mist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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