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보다 내게 더 큰 가르침을 준 사람은 없었다. 아버지는 일자무식의 촌부였다. 그러나 그의 숭고한 경험철학은 2년 전 93세로 세상을 떠난 후에도 심금을 울린다.초등학교 4,5학년 무렵이었다. 매년 5,6월이면 어김없이 보리타작을 해야 했다. 보리이삭을 1시간 정도 햇볕에 바싹 말린 후 아버지는 앞쪽에 서고 어머니, 누나, 나 셋은 반대쪽에 서서 아버지가 먼저 선창으로 "옹헤야" 하며 도리깨로 보리 이삭을 내리친다.
그러면 우리 셋은 한 조가 되어 "옹헤야" 라고 재창하며 따라서 한다. 30∼40분이 지나면 어린 나는 팔이 아파 죽을 지경이다. 도리깨를 놓고 슬그머니 꽁무니를 뺄라치면 아버지는 매정하게 말씀하셨다.
"이놈아! 그렇게 참을성이 없어 어디에다 쓰나, 날파리를 보아라. 날파리는 성질이 급하고 끈기가 없어 하루밖에 살지 못한다. 그래서 하루살이 벌레라 한단다. 너도 그 날파리처럼 하루살이 인생이 될라나." 나는 눈물을 머금고 죽을 힘을 다해 일을 계속해야 했다. 나에게 어려운 일이 닥칠 때마다 이보다 더 큰 교훈은 없다.
또 하나는 대학 1학년 때 일이다. 입학 후 고향을 찾아 아버지를 뵈었다. 아버지는 "이제 대학생이 되었으니 알 것은 알겠지. 이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이 누구냐"고 물으셨다.
나는 "그거야 거지 아닙니까?"라고 답했다. 아버지는 실망하시는 표정으로 "더 깊이 생각해 보아라"고 하며 자리를 뜨셨다. 그 날밤 사랑방에 같이 주무시며 아버지는 다시 물으셨다. 나는 답이 떠오르지 않았다. 아버지는 말씀하셨다.
"이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놈은 놀고먹는 놈이다. 거지는 깡통이 직업이 아닌가. 배가 고프면 허리에 깡통이라도 찬다. 그러나 놀고 먹는 놈은 먹을 게 없으면 남의 물건을 훔치기도 하고 심지어 강도, 살인도 한다. 그러다가 결국 도둑놈 집안이 된다. 얼마나 비참한가?"라고 하셨다.
'정말 옳은 말씀입니다'를 속으로 되뇐 나는 아버지에게 얼굴을 들 수 없을 정도로 내가 부끄럽게 느껴졌다.
나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배울 만큼 배웠다고 자부하지만 일자무식 아버지의 경험철학을 뛰어 넘을 수 없었다. 요즘 같은 노인 경시 시대에 아버지가 주신 고귀한 경험철학에 한없는 경의를 표할 뿐이다.
차 종 태 한국청소년연맹 총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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