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2년 1월20일 나치 지도자 15명이 베를린 근교 반제 호숫가에 모여 유럽 유대인들에 대한 이른바 '최종 해결책'을 결정했다. 최종 해결책이란 학살이다. 그러니까 반제 회의는 흔히 '홀로코스트'라고 불리는 나치 정권의 유대인 학살을 결정하는 자리였던셈이다. 그러나 역사학자들 다수는 반제 회의 전에 이미 아돌프 히틀러가 유럽에서 유대인들을 쓸어버리기로 결정했다고 믿고 있다. 유대인 학살과 관련된 그 이전의 공식 문서가 발견되지는 않았지만, 이미 그 시기에 민간 차원의 유대인 박해가 정부로부터 제재를 받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 반제 회의는 이미 시작된 유대인 박해를 정권 차원에서 공식화하는 자리였다는 해석이다.인상적인 것은 자국 역사의 어두운 부분을 기록하는 독일 교과서의 솔직함이다. 독일의 한 1994년판 김나지움(중고등학교) 교과서는 반제 회의와 그 이후 상황을 이렇게 기술하고 있다. "1942년 1월에 '최종 해결책'이 반제 회의에서 결의됐다. 피점령국의 게토에 살고 있던 유대인들은 동부 유럽의 절멸 수용소로 이송돼 결국 가스실로 내몰렸다. 나치스 친위대의 한 비밀 보고에 따르면, 1944년까지 유대인 400만 명이 살해됐고, 200만 명이 다른 방식으로 제거됐다." 1998년판의 또 다른 김나지움 교과서는 독일 일반 시민들의 책임까지 묻는다. "범죄는국가가 조직하고 명령했지만 그 집행에 광신적 나치스만 가담한 것은 아니었다. 수십만 시민이 이 과정에 연루됐고, 수백만 시민이 이 일에 대해 알고 있었다."
홀로코스트는 20세기의 가장 큰 비극 가운데 하나다. 그런 끔찍한 수난을 겪은 유대인들이 제2차 세계대전 뒤 팔레스타인에 나라를 세우고, 미국의 지원 아래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박해하고 있는 것은 역사의 우울한 아이러니다.
고 종 석/논설위원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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