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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와 현장 / 강제출국 앞둔 조선족타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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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와 현장 / 강제출국 앞둔 조선족타운

입력
2003.01.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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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길가에서 사람 구경하기도 힘들어." 17일 오후 재중동포 집단 거주지역인 서울 구로구 가리봉1동의 조선족타운. 손님 없는 식당을 우두커니 지키던 주인 서모(51)씨는 인기척이 끊긴 재래시장 골목을 쳐다보며 혼잣말을 내뱉었다. "지난해 말부터 손님들이 속속 동네를 떠난다"고 전한 그는 "올핸 푼돈 만지기도 틀렸다"고 푸념했다. 동네 토박이로 15년여 부동산을 운영하고 있는 조윤해(趙潤海·78) 사장은 "최근 두 달간 월셋방 얻으러 오는 사람이 한 명도 없다"며 "이런 경우는 난생 처음 있는 일"이라며 울상을 지었다.■단속피한 엑소더스

3년 이상 불법 체류하고 있는 중국동포들이 3월말 출국시한을 앞두고 집단 대이동에 나서고 있다. 밀집지역을 중심으로 집중단속이 실시되자 이들이 지방은 물론 단속이 덜한 시내 다른 지역으로 피신을 시작한 것이다. 1년 전 만 해도 3,000∼4,000명에 달하던 동포들이 요즘은 400∼500명도 채 안 된다는 것이 지역 주민들의 설명이다.

재중동포의 새로운 도피처로 알려진 곳은 부산, 창원, 구미, 인천 등 지방대도시의 주거개발지역. 가리봉동 D인력소개소의 강모(32) 사장은 "새벽5시 일거리를 찾기 위해 수백 명씩 모이던 조선족 동포들이 30%가량 줄었다" 며 "이들 대다수가 지방으로 내려갔다"고 귀띔했다.

봉천동, 신림동 등의 밀집주거지역도 재중동포의 새로운 거처로 부각되고 있다. 조선족타운 순찰을 담당하는 김모(41) 경장은 "4∼5명이 함께 쓸 수 있는 월세 15∼17만원의 쪽방이 있고 지하철 등 교통이 편리한 곳이면 어디든지 옮겨가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빚만 산더미

법무부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말까지 국내에 거주하고 있는 외국인 근로자는 약 36만명. 이중 80.1%인 28만9,000여명이 불법체류자로 3월말까지 자진 출국해야 하는 근로자(국내체류 3년 이상자)만 총 14만명이다. 그러나 지난달 서울조선족교회가 강제출국대상자 500여명을 상대로 설문 조사한 결과 60% 이상이 '자진 출국할 뜻이 없다'고 밝혀 정부 당국과 마찰이 불가피하다.

실제 조선족타운에서 자진출국을 준비하는 동포들은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실정. 체류 연장 동포들을 위해 귀국 항공권·배표의 환불, 연장업무를 대행하는 대림동 K여행사의 한 직원은 "환불 및 연장을 신청하는 동포들 중 한국에 온지 3년이 넘은 체류자들이 상당수"라고 전했다.

대다수 재중동포는 "고용주의 임금체불 및 각종 사기피해로 돈을 벌긴커녕 수백∼수천만원의 빚만 졌다"며 강제출국의 부당함을 호소한다. 입국 3년8개월째인 황모(47·헤이룽장성)씨는 "안산의 한 중소기업에서 하루 10시간 넘도록 일했지만 사장이 도망쳐 임금 800만원을 받지 못했고 허리디스크까지 겹쳐 빚만 3,000만원이 넘는다"고 하소연했다. 동료들과 함께 체류연장 신청장소인 서울 출입국관리사무소 주위를 기웃거리던 그는 "조만간 지방으로 잠적해 2년만 더 버텨볼 생각"이라고 말한 뒤 자리를 떴다.

외국인 고용허가제를 공약으로 내세운 노무현(盧武鉉) 대통령 당선자에 대한 기대도 자진출국에 선뜻 나서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다. 안산 반월공단의 건설현장에서 일하고 있는 최모(38·지린성)씨는 "체류연장이 가능한 친구들이 '3월이 되면 한국정부 정책이 어떻게 바뀔지 모르니 함께 버텨보자'며 잔류를 권한다"고 말했다.

출국기한이 다가오자 동포들의 반한감정도 위험수위에 다다르고 있다. 가리봉동의 환전소에서 일하는 한 재중동포는 "3월이 지나면 중국에 있는 한국 사람들도 못 배겨 날 것"이라며 재중동포에 대한 푸대접을 비난했다.

설동훈(薛東勳) 전북대 사회학과 교수는 "국내 이주 근로자 중 불법체류자 비율(80%)이 전세계 최고치"라며 "현재의 혼란이 정부의 외국인근로정책 실패와 각종 미봉책에 따른 결과인 만큼 고용허가제 도입과 이후 불법체류자 고용주 엄중단속 등 원론적 대안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준택기자 nagne@hk.co.kr

■ 서경석 목사 인터뷰

"3월말 강제출국시한에 따른 외국근로자의 대혼란은 정부의 주먹구구식 행정이 빚은 예상된 결과입니다. 국내체류 3년 이상 이주노동자의 체류를 1년만 연기하고 송출비리 근절을 위한 개혁정책을 펼친다면 불법체류자 급증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서울조선족교회의 서경석(徐京錫·55) 담임목사는 "진지한 고민 없이는 외국인 노동자를 둘러싼 사회혼란을 근절할 수 없다"고 단언했다. 1989년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을 탄생시킨 주역인 그는 96년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회 위원장 활동 이후 국내 거주 중국동포의 권리보장에 주력해왔다.

"산업연수생제도가 외국노동자의 인권침해는 물론 연수생 선발과 관련한 심각한 송출비리를 초래, 불법체류자 양산의 온상이 되고 있다"고 지적하는 그는 불법체류자를 합법인력으로 전환하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중국동포가 한국에서 일하기 위해 자국 송출기관과 브로커에게 400만∼1,000만원 가량의 사비를 지불해야 하는 현실을 무시한 채 3년만에 자진출국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입니다." 전체 외국근로자의 80%가 불법체류자라 이들을 채용하는 고용주를 처벌할 수 없는 상황이므로 강제출국을 거부하는 노동자들에게 최소 1년만이라도 합법체류 전환기회를 주자는 논리다.

불법체류자 근절과 합법체류전환을 위해 그가 제시한 대안은 외국노동자 선발을 위한 한국어시험제도 도입. "시험의 공정성을 확보하면 인력송출국과 브로커, 국내부처가 연계된 송출비리를 근절할 수 있고 40만 한인동포가 거주하는 중앙아시아국가는 물론 동남아 각국에도 한국어 공부열기가 일어 국익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불법체류자 강제출국은 노무현 정부 출범 후 첫번째 개혁실패사례로 남을 수 있다"고 우려하는 그는 최근 대통령직 인수위의 고용허가제 도입계획에 큰 기대를 나타냈다. 그는 그러나 "송출비리를 근절하기 위한 외교적 노력을 기울이고 합법인력이 충분히 공급된 뒤 불법체류자 고용주를 혹독하게 처벌하는 등 지속적인 개혁이 필요하다"고 충고했다.

/이준택기자

■ 정부의 입장

대통령직 인수위가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 공약인 '외국인 근로자 고용허가제'도입의 법제화를 추진하는 가운데 정부도 3월말 강제출국 대책과 산업연수생제도 개선 등 본격적인 외국인력제도 보완 작업에 착수했다.

종합적이고 근본적인 외국인 노동자 대책 마련을 위해 정부는 지난해 12월 관계부처 국장급 공무원, 연구원, 시민단체대표를 망라한 국무조정실내 '외국인력제도 개선기획단'을 발족시켰다. 부처간 업무 조율을 전담할 기획단은 국내외 실태조사 및 공청회를 거쳐 3월말까지 종합대책을 외국인산업인력정책심의위원회에 제출할 방침이다. 기획단의 한 관계자는 "강제출국 문제를 포함한 모든 문제를 포괄적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한편 법무부 등 관계부처는 "3년 이상 국내에 머문 불법체류자의 강제출국방침에는 변화가 없다"는 입장이다. 강제출국대상자인 중국동포 체류를 1년 연장해달라는 시민단체의 요구에 대해서도 "불법체류자가 더욱 급증하고 산업연수생 등 합법체류자와 형평성에도 어긋난다"는 기본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그러나 인수위 고용허가제 도입 방침이후 해당부처에서는 "출국유예기한 연장신청기간에 고용허가제 논의가 불거져 혼란스럽다", "강제출국 방침이 물건너가는 것 아니냐"는 등의 우려가 나오고있다. 매년 일정수의 외국인력 수입을 공식 허용하고 국내근로자와 동등한 대우를 해주는 고용허가제가 법제화할 경우 현재 진행중인 출국유예연장신청 등 모든 행정절차가 용도 폐기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산업연수생제도 개선을 둘러싼 부처간 이견도 여전해 외국인력제도정비의 전망을 어둡게 하고 있다. 산업연수제의 담당부처인 중소기업청의 관계자는 "지난해 시행된 '1+2제(연수1년 취업2년)'의 효과가 나타나기도 전에 고용허가제를 도입할 경우 국내는 물론 송출국의 혼란만 가중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지난해 불법체류자 정책혼선으로 홍역을 치렀던 법무부도 "노동부, 경제부처의 중장기적인 해외인력수급 정책이 절실하다"는 입장이다. 기획단의 한 고위관계자는 "독일 대만 싱가포르 등 고용허가제를 실시하는 국가의 사례를 다각도로 검토 중이지만 모범성공사례가 없다는 점이 부담스럽다"고 말했다.

/강철원기자 str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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