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30여년간 모나미를 경영하면서 인화 단결을 최고의 경영 덕목으로 삼았다. 위로는 사장부터 밑으로는 생산직 사원에 이르기까지 기업의 모든 구성원이 화합하고 힘을 합치지 않으면 그 기업은 발전할 수 없고, 극단적으로는 문을 닫을 수도 있다고 나는 믿고 있다. 태국공장의 한국인과 태국인 직원들이 상대 국가의 문화적 관습과 전통에 대한 이해를 통해 하나가 되도록 한 것도 그 같은 이유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지 모나미 식구들 만큼 서로 믿고 의지하며 단합하는 경우도 드문 것 같다. 그러나 그런 나의 믿음을 깨는 사건이 발생했다.1980년대 초 은행에서 운전자금을 융통하기로 하고 등재 이사들에게 대출에 필요한 연대보증 입보를 하도록 서류를 돌렸다. 은행에서 돈을 빌리려면 대표이사를 포함한 이사 모두가 연대해 대출에 책임을 지겠다는 약속을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데 정말 희한하게도 단 한명의 등재 이사도 입보를 하지 않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졌다. 당시 모나미에는 나를 포함해 전무, 상무 2명, 이사 2명 등 모두 6명의 등재 이사가 있었는데 이전에는 입보를 단 한번도 거절한 적이 없던 사람들이었다. 한 사람이 개인사정을 이유로 입보를 할 수 없다고 하면 모를까, 전무 이하 이사 5명이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입보를 거절한 것은 필시 누군가의 선동 때문이라고 밖에 볼 수 없었다. 임원들을 경제적으로나 인격적으로 대우하고 또 존경도 했는데 이 무슨 날벼락 같은 일인가 생각하니 절로 한숨이 나왔다. 한편으로는 "몇 명 되지도 않는 회사 임원들의 인화 단결조차 끌어내지 못할 만큼 내가 부도덕한 사람인가"하는 생각에 가슴이 미어졌다. 그만큼 그들은 내가 믿었던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나는 일단 이사들을 모두 내 방으로 소집했다. 그리고 입보를 거절하는 이유를 물었다. 하지만 임원들은 이유는 밝히지 않은 채 "입보를 설 수 없다"고 버텼다. 화가 난 나는 "그렇다면 이사들을 모두 교체할 수 밖에 없다"고 강경한 입장을 밝혔다. 그러자 이사 가운데 한 명이 "사장께서 너무 독단적으로 경영을 하신다. 중역들의 의견이 전혀 반영되지 않고 있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나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고작 그런 이유였단 말인가, 그런 불만 때문에 회사 존립을 위태롭게 할 수도 있는 입보 거부 사태를 일으키다니, 저들이 그러고도 한 기업의 임원이란 말인가…. 나는 너무 낙담한 나머지 속사포처럼 말을 쏟아내고 말았다.
"몇 년전 세금 추징을 당하고 공동 경영인이 회사를 버렸을 때, 난 풍전등화 지경에 이른 회사를 살리기 위해 내 재산을 다 내놓겠다면서 당신들에게 회사를 함께 살려보자고 읍소했다. 그때 여러분들은 어떻게 했나. 남의 일처럼 외면했다. 그날 내 가슴에 대못이 박혔다. 당신들은 나중에야 내 뜻에 동참하겠다며 나를 찾아왔다. 이후 우린 난파선에 함께 올라탄 선원처럼 한 몸이 돼 여기까지 왔다. 그런데 어떻게 나한테 독선적이니 뭐니 하는 터무니없는 이유를 대면서 회사를 나락으로 떨어뜨리려 하는가. 이것이 책임 있는 회사 임원으로서의 태도인가. 당신들이 연대보증 입보를 하지 않으면 모나미는 문을 닫아야 한다. 직원들도 거리로 나앉아야 한다. 입보를 할 수 없다면 나도 중대 결심을 할 수 밖에 없다."
임원들은 유구무언이었다. 뭔가 있었다. 나는 이 어처구니없는 '쿠데타'의 진상을 꼭 밝혀내야 했다. 백척간두에 선 회사를 살리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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