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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론]노무현의 말, 대통령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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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론]노무현의 말, 대통령의 말

입력
2003.01.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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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당선자는 국제 외교무대의 새 스타가 될 것인가. 세계 유수의 언론조차 노 당선자의 이름과 얼굴사진을 노태우 전대통령의 것으로 바꿔 쓰는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저질렀다. 주한미군 철수니 사회주의식 경제모델 도입이니 하는 온갖 추측이 난무하는 것도 노 당선자가 불과 7∼8 개월 만에 혜성같이 등장한 탓이다. 그래서 노 당선자진영은 세계 언론을 향해 '노무현의 정책'이 아니라, '노무현이 누구인지'를 알리는데 집중하고 있는 모양이다.3월 미국방문 첫 시험대

한국의 정치인 중 국제사회에서 그나마 인지도를 유지해온 것은 3김이다. 그들은 실로 오랜 기간 한국정치의 주연배우 역할을 하면서 정치노선이 대외적으로 알려졌고 '누가 어떻게 나아갈 것'이라는 예측을 가능케 했다. 그렇기 때문에 YS나 DJ가 대통령에 당선되었을 때 국제사회는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아쉽게도 현시점에서 노 당선자는 베일 속의 북한 김정일 위원장보다도 국제적으로 '무명 인사'다. "우리는 그를 모른다. 같이 일을 해봐야 얼마나 신뢰할 지 판단할 수 있지 않겠느냐"는 것이 노 당선자에 대한 국제 외교가의 반응이다.

노 당선자에 대한 대부분의 정보는 선거 캠페인이나 TV토론 등에서 나온 그의 '말'을 통해서다. 최근 노 당선자는 대통령당선자 신분으로는 사상 처음으로 한미연합사를 방문해 '우리는 친구'라는 메시지를 전달했다. 또 외교사절들을 만날 때마다 주한미군 철수 반대, 북핵개발 반대 및 대화를 통한 평화적 해결, 한·미·일 공조 중요성을 누차 강조했다. 그러나 아직도 '반미(反美)면 어때'하고 자신 있게 말하던 선거캠페인 과정의 노 후보를 많은 사람들은 기억하고 있다. 이처럼 노 당선자의 '과거의 말'과 '현재의 말'에 적지 않은 차이가 그의 진의를 헷갈리게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선거를 전후로 일어난 촛불시위, 대북 맞춤형 봉쇄정책에 대한 김대중 대통령의 즉각적인 반대 등의 크고 작은 변화를 노 당선자가 내건 '변화와 개혁' 캐치프레이즈와 연관해 생각하게 된다. 또 그가 내세우는 '변화와 개혁'을 한국의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외교안보정책에 어떻게 적용할 지에 대한 다양한 추측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나라 밖 한국의 우방들로서도 북한 핵개발과 미사일 위기라는 위기 상황에서 예측불허의 북한 지도자 김정일, 아직 파악되지 않은 한국 지도자 노무현이라는 새 변수를 맞이한 셈이다. 세계 안보와 경제를 주무르는 4강인 미, 일, 중, 러도 노 당선자의 말 한마디 한마디의 진의를 해석하느라 분주한 모습이다. 미 CNN방송이 이례적으로 미· 유럽연합(EU)상공회의소의 노 당선자 초청간담회를 무려 40여분이나 전세계로 방영하는 파격을 보인 것도 그런 배경에서다.

사사로운 인간관계에서도 말은 신뢰의 기본이다. 국제관계에서 일국의 대통령의 말은 재론의 여지가 없는 최종결재 도장이다. 그래서 취임 연설, 인터뷰, 외교연설 등에 나타난 대통령의 말은 대통령 수사학(Presidential rhetoric)이라는 독립적 학문으로 정착되어있을 만큼 중요하게 다뤄지고 있다. 대통령 취임연설문 작성에 당대의 문사와 정책전문가 수십명이 가담해 수백 번의 수정작업을 거치는 것도 그런 까닭이다.

김정일보다도 국제적 無名

이제 3월이면 노 당선자는 미 워싱턴 방문을 시작으로 세계외교무대에 데뷔한다. 그 무대에서 서로간의 문화적 차이를 인지하고 신중한 용어 선택과 세련된 매너, 정연한 논리로 한국의 국익을 추구할 때 국제 외교가에서 노무현은 새 스타가 될 수도 있고, 그렇지 못할 경우 반대의 길을 갈 수도 있다. 이제 노무현 개인의 말은 없다. 대한민국 대통령 노무현의 말이 있을 뿐이다.

김 정 원 세종대 석좌교수·국제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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