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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릉 숲에서 보내는 편지](42)새와 공생 동백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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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릉 숲에서 보내는 편지](42)새와 공생 동백나무

입력
2003.01.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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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을 가장 완전하게 차지하고 사는 겨울나무를 고르라면 눈 쌓인 소백산의 주목이나, 울진 소광리의 금강소나무 숲이 떠오르지만 남도의 출렁이는 푸른 물을 바라보며 사는 동백나무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지금이 바로 동백나무의 계절입니다.처음엔 동백(冬柏)나무를 겨울나무라고 말하는데 거부감이 있었습니다. 한반도 허리쯤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온실밖 건강한 땅에서 동백나무를 구경하기도 어려울 뿐더러, 주로 봄에 꽃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식물공부를 열심히 하며 계절을 따지지 않고 식물을 보러 다니던 때, 정월 거문도의 바닷가에서 만난 동백나무꽃의 그 붉은 빛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따뜻한 남쪽지방이 고향인 동백나무는 한 겨울이 제 계절이라는 것을 우물안 개구리였던 초보 식물학도가 처음 깨달은 순간이었습니다. 마침 남쪽에서는 만나기 어려운 눈발이 흩날리기 시작했는데 불 붙듯 피어 난 붉은 동백꽃잎에 바다 소금이 변한듯 흰 눈자락이 올라앉는 모습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귀한 모습이었습니다. 동백나무의 아주 독특한 점은 조매화(鳥媒花)라는 점입니다. 수분(受粉)을 하는데 벌과 나비가 아닌 새의 힘을 빌리는 꽃을 말합니다. 크고 화려한 꽃이 많은 열대지방에서는 이러한 조매화를 간혹 볼 수 있습니다. 화질 좋은 전자제품을 선전할 때 등장하는, 꽃을 찾아가 날개를 팔락거리는 파란색 벌새가 그 경우입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조매화는 동백나무가 거의 유일한 듯 합니다. 동백나무의 꿀을 먹고 사는 이 새는 이름도 동박새입니다. 동백나무에는 꿀이 많이 나므로 벌과 나비가 찾아오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꽃이 피는 한 겨울은 곤충이 활동하기에 너무 이른 계절이므로 녹색, 황금색, 흰색 깃털이 아름다운 작은 동박새가 주로 그 임무를 맡습니다.

동백나무가 자라는 곳을 짚어 보면 해류가 많은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내륙으로는 지리산 화엄사 즈음이 북한계인데 해안으로 가면 서쪽으로는 충남 서산이라 하고 섬으로는 대청도까지 올라가며 동쪽으로는 울릉도가 끝입니다. 간혹 추위에 내성이 강한 나무들이 더 올라와 자라기도 하지만 북으로 올라올수록 꽃 피는 시기는 점점 늦어집니다.

동백나무 꽃 소식에 귀를 기울여 보십시오. 봄이 오는 속도를 느낄 수 있습니다. 지난 12월에 시작된 이 꽃 소식이, 꽃잎 하나 상하지 않은 채 그대로 툭툭 떨어지는 장렬한 낙화를 두고 "눈물처럼 후두둑 지는 그 꽃 말이예요"라고 노래한 고창 선운사에 도달한 즈음이면 4월 이미 봄이 와 있을 것입니다.

이 유 미 국립수목원 연구관ymlee99@foa.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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