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뜻밖입니다. 한국 젊은이들의 뜨거운 피를 받은거나 마찬가지니 기필코 일어설 것입니다."17일 서울 여의도 성모병원 10층 병동. 프랑스인 강진수(67·본명 장 크렝캉, Jean Crinquand) 신부는 대전 신탄진고교생 45명이 위문편지와 함께 보내온 헌혈기증서를 보며 새삼 재활의 의지를 불태웠다.
'…우리의 밀알과 같은 헌혈증서로 백혈병과의 전쟁에서 승리하시길 바랍니다. 신부님,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입니다….' 지난 7일 오후 수술 직전 이 편지를 읽은 강 신부는 옆에 있던 두봉(74·본명 르네 뒤퐁) 주교를 끌어안고 한참 동안 눈물을 쏟았다. 신탄진고교생들의 집단헌혈은 강 신부가 5년 동안 사목활동을 했던 대전지역에 그가 대수술을 앞두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져 이루어졌다.
'헌혈왕'이자 '수맥 찾아주는 벽안(碧眼)의 신부'로 잘 알려진 강진수신부가 4년 전 발병한 준(準) 백혈병인 골수이형성 증후군이 급격히 악화해 투병중이다. 이날 비장을 제거하는 대수술을 받은 강 신부의 예후는 일단 좋은 편이지만 안심할 수 있는 상태는 아니다. 주치의 김원철(金原轍)박사는 "보통 사람은 15만∼45만개인 혈소판이 백혈병 전 단계인 5만 이하로 자주 내려가곤했다"며 "이번 수술로 혈소판 숫자를 13만개까지 늘려 일단 고비는 넘겼지만 후유증이 우려된다"고 말했다.
1964년 4월 한국에 입국한 강 신부는 40여년 동안 한국인에게는 말 그대로 '작은 예수'였다. '헌혈은 곧 사랑나누기'라며 무려 200여차례나 헌혈을 해 1990년 대통령 표창을 받았고, 체질에 맞지않는 수맥으로 고통받는 사람을 돕기 위해 수맥 찾기 안내책을 펴내기 까지 했다. 대전, 공주, 부여, 신탄진, 예산 등을 돌며 병들고 외로운 사람들에게 '빈자의 일등(一燈)'역할을 마다하지 않았다.
강 신부와 한국의 인연은 1866년 병인박해 때 28세의 나이로 새남터에서 순교한 5대 외조부 유스토 신부로부터 시작됐다. 당시 외조부와 친지, 친구들이 주고받은 편지를 350쪽짜리 책으로 엮은 '신앙을 위하여'를 읽으면서 유년시절을 보냈던 강 신부는 한국에 빨리 오고싶어 사제가 된지 8개월 만에 한국땅을 밟았다.
잇달아 걸려오는 위문전화를 받던 강 신부는 "아직도 한국인을 위해 할일이 너무도 많다는 것을 하느님도 아실 것이므로 곧 건강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라며 환한 미소를 지었다.
/정원수기자 noblelia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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