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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론]록, 광장, 그리고 2003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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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론]록, 광장, 그리고 2003한국

입력
2003.01.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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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청년의 음악인 로큰롤(록)은 적어도 이 땅에선 저주 받은 존재였다. 록은 20세기 인류 문화사가 낳은 최대의 예술적 사건이란 평가를 받았지만 한국 상륙과정에선 독재정권으로부터 분서갱유의 폭압을 당했다.1970∼80년대에는 진보적 지식계층에서조차 미 제국주의 문화로 낙인 찍혔다. 록 문화가 50년대 미국 10대들의 이유없는 반항심의 대변자로 출발해 60년대 청년 자유주의 문화의 극점을 이루었다는 사실을 상기한다면 이는 참 놀라운 일이다.

이땅의 비주류 음악 상징

박정희에서 전두환으로 이어지는 군사정권 시대는 이 '폭발하는 젊음'의 언어를 잠재적 적대자로 규정했다. 록은 대학가요제 같은 '온순한' 통제의 틀에서 검열· 순치돼야 할 대상이지, 광장은 물론 음습한 지하실에서도 용납될 수 없는 존재였다. 자유분방한 상상력으로 금기를 조롱하는 문화적 '반체제 세력'으로 성장할까 두려웠던 것이다.

한국의 록은 70년대 초 신중현과 엽전들의 '미인'이 불러 일으킨 짧은 감전(感電)과 이후 산울림의 신선한 반동, 그리고 80년대 들국화로 상징되는 언더그라운드의 질풍노도와 같은 비연속적 돌출을 제외한다면 결코 주류로 진입할 수 없었다. 정치적 견제, 사회적 사시, 도덕적 힐난, 굉음에 대한 물리적 통제…. 이 모든 사슬이 한국의 록에 한정치산자의 운명을 강요했다. 그것은 검열이 철폐되고 문화적 다원성이 개화하는 90년대에 이르러서도 근원적인 전환을 불러 오지 못했다.

하지만 지난해 인터넷 커뮤니티에 기반한 노사모와 붉은 악마, 그리고 촛불 시위대가 광장을 창조해 내고, 거대한 탈국가적 공동체를 온라인과 오프라인에 구현하는 역동성을 보이면서 지구촌을 경악에 빠뜨릴 때, 바로 그 광장에 등장한 문화는 다름 아닌 록 음악과 록 밴드의 열혈 청년들이었다.

붉은 색의 물결과 전기로 증폭한 록의 굉음을 배경으로 시청 앞 광장은 그저 붐비는 도심의 도로에서 새로운 문화 공간의 왕관을 쓰게 된다. 15년 전 6·10 시민항쟁 때 모인 시민들이 목이 터져라 불렀던 노래는 '애국가'와 '아침이슬'이 고작이었다.

그러나 2002년 봄, 전국을 돌며 정치 신화를 일구어낸 노사모가 80년대 노래운동의 호흡을 되살리더니 이윽고 여름이 되자 홀대 받던 온갖 록 밴드들이 일거에 거리와 시민들을 장악하는 폭발력을 보였다.

똑 같은 굉음인데 광장은 왜 주류 댄스뮤직을 외면하고 비주류 록을 선택했을까? 2002년 대한민국의 현실이 그 감춰진 비밀을 뒤늦게 극명히 드러낸다. 댄스뮤직이 유흥가의 폐쇄적 공동체를 기반으로 주류 공중파 매체의 시각적 욕망을 충족시킨다면, 록은 변두리에 지하 커뮤니티를 지니기도 하지만 대낮 광장의 집단적 엑스터시를 충족시키는 에너지를 응축하고 있다.

폭발적 에너지 계속될것

한국의 록은 60∼70년대 열악한 자본주의의 한계로 특수 계층 젊은이들의 전유물이 될 수밖에 없었다. 70년대 한국 청년문화의 주류는 대중적 접근이 용이한 통기타였다.

이어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을 경험한 386 하드코어들은 록에 대해 무의식적으로나마 친근감을 느꼈던 70년대 인텔리겐챠들과 달리 노골적인 적대감을 드러냈다. 당시 대학가를 휩쓸던 노래운동에서 전자기타와 드럼이 죄악시 되었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랬던 록이 월드컵을 신호로 서울 심장부에서 새로운 문화 혁명 세대와 조우했다. 그저 성실하게 자신의 길만 갔던 윤도현 밴드는 하루 아침에 국민 밴드로 부상했고, 체리필터는 그해 하반기 최고의 성과를 올린 신예가 됐다. 한국 록 문화의 새로운 연대기는 2003년에도 계속될 것이다.

강 헌 대중음악평론가·단국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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