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盧武鉉) 대통령 당선자의 점진적 재벌개혁 표명에도 불구,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산업자본과 금융자본 분리'를 타깃으로 하는 초강수를 잇따라 내놓고 있다. 이는 재벌의 금융지배를 막지 못할 경우 고객자산이 대주주와 계열사에 전용돼, 금융산업까지 동반 부실화할 수 있다는 문제의식 때문이다. 인수위는 이미 금융기관 계열분리 청구제, 2금융권의 계열사 주식취득 제한 등 공정거래법을 통한 재벌개혁 방안을 내놓은 데 이어, '대주주 자격유지제도' 도입까지 추진하고 있다.그러나 이 같은 제도들이 대주주의 주식매각을 전제하고 있는 것이어서 사유재산권 침해라는 반발이 거셀 전망이다.
■재벌 금융사 문제점
재벌의 2금융권 지배에 따른 문제의 핵심은 보험 증권 카드 등 금융기관이 대주주와 계열사의 '자금 파이프' 역할을 하면서 고객 피해와 금융기관 부실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것. 공정위가 지난해말 국회에 제출한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1999∼2002년 적발된 30대 그룹의 부당내부거래 중 금융계열사가 비금융계열사에 불법지원하다 적발된 규모는 11조296억원에 달한다.
금융 계열사를 통한 저리의 부당 자금지원, 대주주에 대한 편법지원은 결국 고객의 수익감소를 초래, 그 부담이 전가된다. 대한생명이 부실화한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더욱이 2금융권이 재벌에 집중됨에 따라 시장경쟁을 제한, 금융산업구조를 왜곡하고 비효율을 가져 올 수도 있다. 실제 카드업계는 삼성·LG·현대 등 재벌계 카드사의 시장지배율은 99년 32.5%에서 지난해 9월 현재 46.5%로 늘어났고, 생보의 경우 삼성생명 한 곳의 시장지배력이 40%에 달한다.
그러나 2금융권의 경우 비상장사가 많기 때문에 경영투명성, 지배구조가 열악할 뿐 아니라 문제가 적발됐을 때도 해당 금융기관이 처벌을 받는 것이지 대주주에 대한 부실책임은 미미한 실정. 이동걸(李東傑) 인수위원은 "은행은 소유제한이 있고, 한도내에서 지분을 추가로 늘릴 때마다 자격심사를 받지만 비은행권은 소유제한도, 자격유지 요건도 없어 대주주에 대한 견제와 책임추궁이 거의 없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인수위의 확고한 의지
인수위측의 산업자본과 금융자본 분리에 대한 의지는 확고하다. 금융회사 계열분리 청구제는 이미 재경부 금감위 등이 제도 도입을 위한 태스크포스팀을 구성했고, 재벌 금융사의 계열사에 대한 주식취득제한 및 의결권행사 금지 등도 공정위가 추진중이다. 금융기관이 부당내부거래에 동원됐을 때 행정당국이 법원에 계열분리를 청구할 수 있는 계열분리청구제가 이미 계열화한 금융사를 재벌로부터 떼내기 위한 것이라면, 금융사의 주식취득제한 등은 재벌이 금융계열사를 지렛대로 삼아, 비금융계열사를 우회 지배하는 것을 차단하자는 취지다.
여기에다 인수위가 2금융권의 '대주주 자격유지제'까지 도입키로 한 것은 공정거래법뿐 아니라 금융감독을 통해서도 재벌의 금융지배를 철저히 차단하겠다는 강력한 의지의 표현이다. 계열분리청구제는 부당내부거래 등에 국한된 것이지만, 대주주 자격유지제는 대주주의 재무건전성, 기타 금융관련 법령 위반 등을 포괄하는 것으로 파괴력이 훨씬 크다. 금감위 관계자는 "이 제도는 동방금고 사건, 한화의 대생 인수 과정에서 도입 필요성이 제기돼 왔다"며 "제도 도입시 계열분리청구제를 대체·보완할 수 있는 강력한 수단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재계에서는 대주주에게 지분매각을 명령한다는 것은 사유재산권 침해이며, 주식시장에서의 지분매입을 통한 M& A(인수합병)에대해서도 대주주를 가리겠다는 것은 경제적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라고 강력 반발하고 있어 논란이 예상된다.
/유병률기자 bryu@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