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盧武鉉) 대통령 당선자가 17일 현 정부 의혹 사건에 대해 여야 합의에 의한 특검제·국정조사 수용 의사와 검찰 수사를 통한 진실 규명 의지를 동시에 밝힌 것은 새 정부 출범 과정에서의 난관 극복을 위한 다목적 포석이다.가장 기본적으로는 새 정부 요직 인선에 따른 국회 인준에서 야당의 협조를 얻고 야당과의 대화 기조를 유지, 집권 초기를 원만하게 이끌겠다는 의도가 읽힌다. 노 당선자는 지난 대선 과정에서도 현 정부 의혹 사건에 대해 상대적으로 강경한 입장을 밝혔지만 의혹 사건 처리 문제가 여야간 현안이 돼 있는 상황에서 더 이상 방치하기 어렵다는 판단을 한 것이다.
그러나 노 당선자가 목표로 하고 있는 것이 대야(對野) 메시지 전달에 그치는 것은 아니다. 특검제·국정조사 실시 문제에 대해 의견이 통일돼 있지 않은 여권 내부를 겨냥한 측면도 간과할 수 없다. 노 당선자는 당정 분리의 원칙에 따라 여야간 협상 과정에서의 민주당 입장에 대해 공식적인 견해 표명을 하기 어려운 처지다. 현재 민주당 내부에 특검제 등의 수용에 전향적인 세력이 있는 게 사실인 점을 감안하면 노 당선자는 우회적인 방식으로 이들의 입지를 강화하려 했다고 볼 수 있다.
이와 관련 노 당선자의 한 핵심 측근은 "의혹 사건 처리 방향과 관련해 민주당내 개혁 세력은 정정당당한 해결 방법을 추진하고 있으나 일부 당 지도부는 다른 생각을 갖고 있다"고 말해 노 당선자의 의중과 일부 지도부의 생각이 같지 않음을 시사했다.
노 당선자는 대통령이 권한을 행사할 수 있는 검찰 수사에 대해선 당정 분리 원칙에 얽매이지 않고 보다 명확한 입장을 밝혔다. 현 정부 임기 안에 의혹 사건에 대한 검찰 수사가 미진할 경우, 대통령 취임 이후 수사에 착수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이다. 이는 야당을 협상 테이블에 묶어 두면서 새 정부 출범을 원활하게 하려는 시도로 풀이된다. 다만 노 당선자의 진실 규명 의지를 야당이 어떻게 평가할지는 별개의 문제다.
노 당선자의 두 가지 구상에는 선택적인 요소가 있다. 여야 합의로 특검제 실시 등이 타결되면 취임 이후 검찰 수사는 자연히 필요 없는 일이 된다. 이와 관련해 노 당선자 주변에서는 "현 정부 의혹 사건에 대해 노 당선자가 직접 칼을 빼 드는 상황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얘기가 나온다. 어떤 해결 방식을 택하든 취임 이후까지 현 정부 관련 의혹의 불씨가 남겨지는 상황은 피하고 싶은 것이다.
노 당선자측의 특검제 등 수용 의사가 현 검찰에 강력한 수사를 촉구하는 압박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해석이 나오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고태성기자 tsg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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