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아침 인수위 사무실. 조간 신문의 '총리 실질제청권 법적 보장'기사를 본 인수위 한 핵심인사는 "현행 법 테두리 내에서 운영의 묘를 살릴 일인데…"라며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다른 인수위 고위 관계자는 아예 노골적으로 "그것은 그 사람들 견해"라고 선을 그어 버렸다. 대선때 이미 책임총리제를 공약한 노무현(盧武鉉) 대통령 당선자의 핵심 측근들이 총리실의 '책임총리제 구현'보고를 이처럼 냉소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은 행태로 비칠 수도 있다. 그러나 헌법을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인수위의 이런 반응에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 없다.우리 헌법은 이미 "국무위원은 국무총리 제청에 의해 대통령이 임명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총리는 국무위원 해임건의권과 내각 통할권도 보장 받고 있다.
그런데 총리실은 16일 총리에게 정부조직법상 관할 부처 장·차관에 대해 실질적 임명제청권을 보장한다는 내용의 '책임총리제' 방안을 인수위에 보고했다. 이는 헌법상 총리에게 보장된 권한을, 그것도 범위를 스스로 한정해 인수위에 재차 요청한 것이어서 누가 보아도 선뜻 납득하기가 어렵다. 그 동안 대통령이 장관 인사권을 독점, 총리의 장관 제청권이 유명무실했던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총리실의 제안이 이런 현실을 감안해 나온 것이라는 점은 나름대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아무리 의도가 좋다 해도 멀쩡한 헌법 규정을 사문화시키면서까지 총리 권한을 보장 받으려 한다면 문제가 있다. 현실적으로 총리실 안처럼 소수의 관할 부처에 대한 제청권으로 총리의 권한이 강해질 지도 의문이다. 제청권의 범위를 한정한 것은 결국 당선자의 눈치보기로 비칠 소지도 있다.
"개혁은 물 흐르듯이 해야 한다"는 노 당선자의 말처럼 책임총리제를 통한 권력 분산도 최고 권력자의 의지를 담아 현행 헌법의 테두리 안에서 자연스럽게 이뤄지는 게 정도일 것이다.
배성규 정치부 기자 veg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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