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학교 교육에서 철학과 논리적 사고 훈련은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 그래서일까? 프랑스 미디어를 통해 흔히 접하는 게 이념적 토론이다. 9·11 테러 사태와 지난해 대선에서의 사회당 대패, 극우파 돌풍의 충격은 프랑스 지식인들 사이에 열띤 이념 논쟁의 불을 댕겼다.서양 문명과 이슬람의 충돌, 그리고 고정 관념이 된 반미주의의 원인은 무엇인가? 민주주의는 민주주의의 적인가?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후 프랑스 좌파의 이데올로기는 어떻게 변했는가? 프랑스 좌파 정부는 그 동안 좌파 이념에 충실했는가?
이런 의문을 주제로 많은 책이 쏟아져 나왔다. 그 중 대니얼 린덴베르그의 '질서의 복귀'는 지난해 12월 출간 즉시 프랑스 지식인들 사이에 큰 파문을 일으켰다. 100쪽 미만의 소책자인 이 책은 '신 반동분자들에 대한 심문'이란 부제를 달았다. 대표적 좌파 출판사 쇠이유의 '이념들의 공화국'이란 총서의 하나로 나왔는데 지난해 사망한 저명한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의 계승자로 알려졌으며 현 콜레주 드 프랑스 교수인 피에르 로잔발롱이 이 총서를 주관하고 있다.
저자 린덴베르그는 프랑스에서 태어난 폴란드계 유대인으로 파리 8대학 이념사 교수이며 현재 사회당 소속이다. 2차 대전 후 대부분의 프랑스 지식인들이 공산주의에 가담했듯 그도 젊었을 때는 공산주의 대학생 연합회, 마르크스와 레닌주의 청년연합회에서 활동했다.
그의 저서 '국제공산주의와 계급학파'(1972) '발견할 수 없는 마르크스주의'(1975)는 초기 사상을 보여준다. 그 후 전체주의적 마르크스주의와 결별하고, 생 시몽 등의 프랑스 사회주의 전통과 만난다. 근래에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문제에 관심을 갖고 민족주의적 유대주의에 반대, 유대인들의 범세계적 휴머니즘을 호소하는 '이스라엘의 인물들'(1997)을 출판했다.
'질서의 복귀'에서 신 반동분자들이란 최근 신 보수주의의 이념으로 전향한 사회주의 좌파계 작가와 지식인들, 특히 9·11 사태 이후 급전한 유대계 지식인들이다. 이들은 사회 전역에 자유의 바람을 몰고 온 '68년 5월 운동'의 정신에 등을 돌리고 질서와 권위 회복, 안전을 시급한 가치로 내세우며 사회주의 이념인 평등주의, 반 인종차별주의, 타문화 수용, 이슬람 등을 공격한다는 것이다. 이들의 변화는 대선의 극우파 돌풍, 좌파의 쇠퇴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
물론 이들은 이 책을 비난하고 나섰다. 오히려 린덴베르그 자신이 스탈린주의로 퇴보하고 있을 뿐이며 자신들은 민주주의가 처한 위기 상황을 증명했다고 반박하고 있다.
좌파 정부의 실패로 당분간 프랑스 좌파는 이데올로기와 현실의 괴리로 갈등과 혼란을 겪을 전망이다. 정치는 현실에 적응해야 하기 때문이다.
조혜영 재불 번역가 문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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