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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빚 깎아줘" 배짱채무자 급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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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빚 깎아줘" 배짱채무자 급증

입력
2003.01.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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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업(비은행계) 카드업체인 S사 채권지원팀에 근무하는 K씨는 새해 들어 채무자들의 달라진 태도에 크게 당황하고 있다. 신용불량자나 연체자들이 전화를 걸어 다짜고짜 "빚을 깎아달라"고 큰소리치기 일쑤이기 때문이다. "다른 업체는 다 깎아주는데 왜 여기만 뻣뻣하게 구느냐" "요구조건을 안 들어주면 개인워크아웃 신청을 하겠다"는 협박성 전화도 상당수다. K씨는 "빚을 다 갚으면 손해라는 인식이 급속히 퍼지면서 상환능력이 있는 채무자들도 '빚을 탕감 받을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달라'고 물어올 정도"라며 고충을 토로했다.■'안 갚아도 된다' 코치까지 받아

지난해 11월부터 도입된 개인워크아웃(신용회복지원협약)제도를 악용하거나 새 정부 출범 때마다 정례화 되다시피한 신용사면조치를 기대해 소액 대출도 갚지 않는 등 도덕적 해이 현상을 보이는 채무자들이 급증하고 있다. 특히 일부 채무자들은 금융권 종사자출신, 채권추심업체 직원 등으로부터 빚을 적게 갚는 방법까지 '코치'를 받기도 한다. 이들이 귀띔받는 핵심지침은 '버티면 무조건 깎아준다' '이자는 한푼도 안낼 수 있다'는 등 채무자들의 귀를 솔깃하게 하는 자극적인 내용이 대부분.

또한 카드사나 은행에 먼저 전화를 걸어 '개인워크아웃 운운하며 강하게 선수를 치고 들어가면 채권자들도 순순히 응할 수밖에 없다'는 등 '전략적'으로 기선을 제압하는 방법도 가르친다.

■채무탕감 훈수 사이트도 등장

신용불량자나 개인 파산자 2,000여명이 모인 유명 포털사이트의 카페 게시판에는 신용불량자 '선배'들이 예비파산자를 상담해주는 내용과 카드사나 금융기관을 원색적으로 비방하는 글들이 대거 올라와있다. 욕설과 비방은 이내 금융기관을 '공공의 적'으로 규정, 사례별로 빚을 줄일 수 있는 방법까지 가르쳐주고 있다.

"길거리 아줌마한테 카드를 만들었으면 인적서류가 위조됐다고 주장해라" "사회활동 하는데 지장이 없는 주부들은 무조건 '배째라'식으로 나가라" "20대 초반의 학생들은 미성년자때 카드를 발급 받았다고 우겨라" 등 내용도 가지가지다.

신용회복지원위원회에 따르면 '배짱채무자'들이 늘어나면서 지난해 10월 5,000여건에 불과했던 개인워크아웃 신청 관련 상담건수는 두달 사이 3배 가까이 늘어나 같은해 12월에는 1만3,000여건으로 급증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관련업계는 하루에 수백통에 달하는 채무자들의 전화로 다른 업무는 거의 손을 놓을 정도다. 조흥은행 신용관리팀 박존하(朴存夏) 차장은 "요즘은 과거에 무분별하게 신용카드를 남발했던 죄값을 치르는 기분"이라며 "하지만 문의자 절반 이상이 200만∼300만원대의 소액 대출자인데도 채무를 변제 받으려고 해 당황스러울 때가 많다"고 밝혔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도 "이번 새 정부 출범 때는 과거와 달리 신용불량자 사면 조치가 없을 것"이라며 "스스로 노력해서 돈을 갚고 재기하는 풍토가 정착돼야만 할 것"이라고 말했다.

/강철원기자 str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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