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날 뚜루루∼, 넌 지겹지도 않니?" 여자친구의 매서운 구박에 남자는 먼산만 쳐다본다. 한 스님은 휴대폰에 귀를 쫑긋이 기울이고 법당 문간에 우두커니 섰다. 헤어지는 연인들이 마지막 한 마디를 남기기 위해 전화를 걸었다가 아무말 없이도 서로의 진심을 확인한다. 전화를 걸었을 때 수화기에서 흘러나오는 '뚜루루' 통화대기음 대신 전화 수신자가 정해놓은 소리를 들려주는 '컬러링'(통화 연결음 서비스) 때문에 벌어지는 광고속의 한 장면이다.지난해 3월 서비스를 시작한 이래 불과 10개월 만에 500만명이 가입한 '컬러링'은 SK텔레콤 전체 가입자의 3분의1 이상(35%)이 애용하는 '2002년 최고 히트상품'이다.
컬러링 서비스를 개발한 SK텔레콤 마케팅 전략실의 정영배 과장은 컬러링의 탄생을 '콜럼버스의 달걀'에 비유한다. 평균 5∼7초, 길게는 20초 이상 기다리는 통화연결 시간을 활용하려는 시도는 많았지만 '발상의 전환'이 승패를 갈랐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예가 모 이동통신사가 시도했던 'i링' 서비스. 통화연결음으로 광고를 듣고, 통화 요금을 2,000원까지 할인받는 서비스였다. 하지만 전화를 걸 때마다 광고를 듣는 것이 그리 유쾌할 리가 없었다. 가입자들이 쉽게 질리는 바람에 단명하고 말았다.
i링의 선례는 SK텔레콤에도 영향을 미쳤다. 이와 유사한 서비스 제안을 받고 고민하던 차에 통화연결 시간의 활용 자체가 '무리가 아니냐'는 의견이 나온 것. 이때 SK텔레콤에 음성메시지 녹음 등에 쓰이는 '교환 부가장비'를 공급하던 파인디지털이란 업체가 이색적인 제안을 해왔다. '전화 거는 사람에게 전화 받을 사람이 정해놓은 메시지를 들려주는 서비스를 하자'는 것이었다.
마케팅 전략팀의 양옥렬 차장은 "지금까지 찾던 것이 '이게 아닌가' 싶은 감이 들었다"고 말했다. 지금껏 '내가 듣던 서비스'를 '남이 듣는 서비스'로 바꾸자는 신선한 발상의 전환이었다는 것이다. 바로 마케팅 전략팀 내에 프로젝트 팀이 구성됐고, '무미건조한 통화연결음에 색깔을 넣어보자'는 의미에서 상품명은 '컬러링'으로 정해졌다.
그러나 컬러링 서비스에 대한 사내의 비판은 거셌다. 우선 '남을 위한 연결음 서비스에 돈을 쓸 사람이 있겠느냐'는 비판이 쏟아졌다. 무엇보다도 엄청난 비용이 문제였다. 전국에 산재한 100여개의 대형 교환기마다 컬러링 기능을 담당하는 'IP장비'를 설치해야 했는데 그 비용이 만만치 않았다. 초기 투자비용만 100억원 정도로 추산됐고, 최소한 100만명 이상이 가입해야 수지를 맞출 수 있다는 추산도 나왔다.
이런 상황을 타개해 준 것이 '벨소리' 서비스의 성공이었다. 1999년 서비스가 시작된 이래 3년 만인 2001년 연간 500억원 시장으로 급성장한 벨소리 서비스의 성공요인은 이것이 '자기 표현의 수단'이라는 것이었다. 자신만의 벨소리에서 더 나아가, 남이 듣기 때문에 바로 자신의 이미지라는 것이다.
우여 곡절끝에 컬러링 서비스 개발에 들어간 것은 2001년 5월경. 무려 8개월만의 개발 기간을 거쳐 2002년 1월 첫 컬러링 서비스가 시작됐다. '컬러링' 서비스는 금새 장안의 화제가 됐다. 서비스 두 달 만인 5월초 100만명을 돌파하자 다른 이동통신 업체들도 '필링' '링투유' 등의 유사 서비스를 잇따라 내놨다.
/정철환기자 ploma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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