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핵문제로 온 지구가 떠들썩하다. 적어도 서울에서 보기는 그렇다. 역사는반복되는 것일까? 1993∼94년에 있었던 핵위기가 다시 재연되고 있으니 말이다. 현재의 핵사태는 당시의 상황과 똑같지는 않지만 유사하다. 따라서 이번 위기도 대화로 매듭지어질 공산이 크다. 관련 당사국 누구도 전쟁을 통한 해결을 주장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문제는 금번 사태가 대화를 통해 해결된다 하더라도 언제 다시 재발할지 모른다는 데에 있다. 미국의 세계관과 북한의 세계관이 너무나 다르기 때문이다. 미국은 기독교적 관점에서 '비기독인'을 악으로 규정하고, 북한은 '혁명적 수령관'에 입각하여 수령을 절대화하고 있다. 미국과 북한은 서로를 악으로 상정하고 있다.
2분법 사고론 해결 난망
모든 사물을 선과 악으로 구분하는 태도는 매우 비민주적이다. 2분법적 사고는 타협의 여지를 원천적으로 봉쇄해 버리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절대로'라는 말도 비민주적인 용어이다. "이것은 절대로 안된다"는 말은 해결방안의 범위를 축소시킨다. 따라서 '절대로'라는 말은 '절대로' 사용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어떤 한계도 설정하지 않은 채 모든 주체들이 둘러앉아 난상토론을 통해 최선의 방안을 도출해 내는 것이 필요하다. 이것이 자유민주주의이다.
미국은 자타가 공인하는 민주주의 국가이다. 이 점에서 미국이 북한을 악으로 규정해, (어쨌든 공식적으로는) 핵포기 이전에는 '절대로' 협상이나 지원은 없다고 단정한 것이나, 악으로 분류된 북한이 협상을 애걸하는 모습은 아이러니다. 미국이 정치 경제 사회 군사 등 모든 면에서 봉건성과 후진성을 면치 못하고 있는 북한과 티격태격하는 모습은 그리 좋아 보이지 않는다. 물론 북한도 불가침 조약 체결을 전제조건으로 내건 것은 협상을 원하는 자의 바람직한 태도가 아니다.
북한이 우리에게 '비정상적 집단'으로 비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러나 북한은 1998년 '강성대국' 천명 이후 나름대로 '정상적인' 조치들을 취해 온 것도 사실이다. 남북 정상회담, 내부 경제개선 조치, 신의주 특구 추진, 과거 일본인 납치 사과, 핵개발 계획 시인 등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그러나 이러한 조치들은 오히려 북한을 곤경에 빠뜨렸다. 이에 퇴로가 없다고 판단한 북한은 거꾸로 공격적인 태도를 취하기 시작했다.
북한은 자신이 곤경에 빠진 것은 모두 미국에게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 것 같다. 미국과의 직접 담판을 요구하는 것도 그런 이유다. 물론 미국은 이를 거부하고 있다. 미국은 북한을 밥먹듯이 약속을 어기는 매우 '불량한' 국가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북·미간 갈등이 장기화하면서 가장 큰 고통을 받는 것은 바로 한국이다. 우리는 고통에서 헤어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미국을 비롯한 모든 관련국가들을 상대로 전방위 외교를 경주하고 있다. 이것은 분명 1993∼94년의 핵위기 때와 다른 모습이다.
실질 보상으로 설득 노력을
그러나 모든 것이 우리 뜻대로 되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각국의 이해관계가 너무 다르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는 외교적 노력보다는 실질적 보상을 통해 미국과 북한을 설득해야 할 시점에 와 있다. 북한 핵문제가 우리의 안보, 경제에 치명적 손상을 줄 것이라고 국민들이 우려하고 있다면, 국가적으로 어떤 부담도 감수해야 한다. 이것이 전쟁보다는 낫기 때문이다. 주변국들은 말로만 평화적 해결을 외칠 뿐 경제적 부담을 지려고 하지 않는다.
우리가 핵문제를 주도적으로 풀기 위해서는 북한에게는 식량과 에너지를, 미국에게는 한미 공조 및 대외정책 지지라는 반대급부를 주어야 할 것이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미국과 북한에게 남북 공조가 미국의 이익에 반하지 않고, 한미 공조가 북한의 이익에 반하지 않는다는 각각의 메시지를 분명히 전달해야 할 것이다.
전 현 준 통일연구원 상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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