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어서는 늘 사이가 좋지 않던 부부가 나이 마흔, 쉰에 따끈따끈한 사이가 되는 경우가 있다. 주로 남편 쪽의 불성실로 금이 가는 부부관계는 "그래도 아내가 제일 살갑다"는 남편의 자기 반성적인 굴복을 통해 회복된다. 그러나 그런 심리의 기저에는 지나온 자기 인생을 부정하고 싶지 않은 일종의 자기보호본능이 작용한 것은 아닐까. "과거는 즐거웠다"는 논리로 무장한 최근 복고영화에 관객이 몰리는 것도 역시 지난 시간마저도 '의미 단락'으로 기억하고 싶은 감독과 관객의 '공모' 결과라고 우기고 싶다.추억이란 참으로 신기한 물건인 것이 한 번도 꺼내 본 적이 없어도 누가 "당신 이런 거 있느냐"고 물으면 가슴 어딘가에서 "여기요"하며 고개를 든다. "너, 스잔이 좋아? 경아가 좋아?"(영화 '품행제로') 스잔과 경아는 1986년 당시 가요 프로그램에서 백중세를 겨루던 김승진과 박혜성의 노래. 모두 이 두 노래가 데뷔작이자 은퇴곡이기 때문에 '가수하면 조용필이지'라고 생각하는 이들에게 두 가수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스잔이냐, 경아냐"라고 물으면 기어이 아는 사람을 찾아내 "그 노래 어떻게 시작하냐"고 물어야 직성이 풀린다. 재현되는 과거는 단선적 편가르기를 유도하는 힘을 갖고 있다.
복고영화의 주인공은 단연 소품이다. '노래'라는 소품이 아련한 기억을 깨운다면 '선망'이라는 키워드가 들어있는 소품도 필요하다. 장진 감독이 제작한 옴니버스 영화 '묻지마, 패밀리' 중 '내 나이키' 편에서 선 보인 나이키 운동화에 대한 선망은 '품행제로'에서는 유사품인 나이스를 등장시키는 것으로 절정에 이른다.
복고적 영화의 특성은 국경을 초월해 나타나는데 스티븐 스필버그의 새 영화 '캐치 미 이프 유 캔'에서 그는 지금은 파산한 팬암항공사의 촌스러운 파란색이 얼마나 사람들을 설레게하는 색깔인지, 명사의 모임인 로터리 클럽이 얼마나 가입하기 어려운 신사들의 안식처였는지를 증명한다.
이쯤되면 멀지않은 미래 2010년대('A.I')나 2050년대('마이너리티 리포트')를 소년적 정서로 탐색하던 스필버그 감독이 1960년대로 돌아간 이유를 추론할 수 있겠다. 감독이나 관객은 '지금, 여기'를 말하고 듣고 싶지 않은 것이다. 하긴 추리닝을 입어도 폼이 쫙쫙 나던, 그때가 좋긴 했다. 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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