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증시의 '돈 줄'이 말라가고 있다.시중 부동자금은 370조원이 넘을 정도로 넘쳐나고 있지만 좀처럼 주식시장으로 물길을 돌릴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고객예탁금은 갈수록 줄고 있고 투신사들의 주식형 펀드 잔액도 바닥났다.
오히려 투자자들이 펀드를 환매하면서 돈을 찾아가 기관들은 지수하락에도 불구하고 주식을 사들이기는커녕 내다 팔아야 하는 악순환을 거듭하고 있다. 이 때문에 연초 예상했던 유동성 장세 기대가 완전히 물거품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지난해 초만 해도 10조원대를 유지하던 고객 예탁금은 작년 4분기 이후 급감하면서 올들어서는 8조원마저 무너진 상태다. 13일 기준 고객예탁금은 7조8,162억원으로 2001년 9·11테러 이후 16개월 만에 가장 낮은 규모로 떨어졌다.
시중 자금의 단기 부동화가 심해지고 경기 불안 등으로 안전자산 선호현상이 지속되면서 돈이 주식을 떠나 채권으로 이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거래량과 거래대금의 직접적인 자금원이 되는 고객 예탁금의 이 같은 감소 현상은 앞으로 주가 흐름을 판단하는데 중요한 지표가 되고 있다. 1998년 이후 종합주가지수 흐름과 예탁금과의 상관관계는 0.87∼0.91에 이를 정도로 밀접하다. 증시가 좋아지면 주가와 예탁금이 서로 상승작용을 일으켜 증시를 떠받치지만 침체장에서는 오히려 악순환의 고리를 만든다.
LG투자증권 강현철 연구원은 "과거 경험상으로 보면 7조∼8조원의 예탁금은 바닥권에 진입한 것으로 분석되지만 감소 추세가 곧바로 상승 전환되기보다는 추가적으로 줄어들 가능성도 있다"고 우려했다.
전문가들은 주식시장에서 빠져나간 예탁금이 채권 등 다른 자산으로 이전한 것으로 보고 있다.
LG투자증권 분석에 따르면 지난해 주식(종합주가지수)·채권(3년만기 회사채 AA등급)·부동산(서울아파트 매매지수) 등에 의한 수익률을 비교한 결과, 아파트와 회사채는 30.8%와 19.4%의 수익률을 보인 반면 주가지수는 0.7%에 불과했다.
지난해 주식시장에 실망한 투자자들이 여전히 부동산에 기웃거리고 채권에 손을 대면서도 좀처럼 증시로 돌아올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는 의미다.
굿모닝신한증권 강보성 연구원은 "중장기적 상승 흐름을 위해서는 시중자금이 증시에 들어와 고객 예탁금이 증가하고 지수 상승을 뒷받침하는 자금흐름의 선순환이 이뤄져야 한다"며 "경기 불안과 이라크전쟁 가능성, 북한 핵 문제 등으로 자금 유입을 자극할 모멘텀(추진력)이 없어 당분간 유동성 장세는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김호섭기자 drea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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